한국은행은 마침내 콜금리를 4.75%로 내렸다. 올해 들어서 2월에 이어 두번째 금리를 내린 것이다. 미국 연준리(FRB)가 올 들어 여섯번에 걸쳐 금리를 3.75%로 내린 선제적 통화관리에 비하면 한은의 금리운용은 비교적 신중하다고 해야 할까. 이번의 콜금리 인하와 관련해서 시기와 예상효과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았다. 전철환 한은 총재는 금리인하의 배경을 설비투자 부진 및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산업생산활동이 계속 둔화되는 만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등 세계경제의 회복전망도 불확실한 만큼 재정 및 통화정책 면에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은은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업계로부터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압력을 받아왔다. 한은은 한동안 물가불안을 우려해서 금리인하를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달 한은은 상당히 비관적인 하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았다. 올 하반기중 우리경제는 경상수지 흑자는 1백30억달러 내외로 크게 늘고,물가상승세는 둔화되지만 경제성장률은 연간 3.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경제성장률 전망은 그동안 정부 및 국내 경제연구기관들의 예측보다 더 비관적인 것이었다. 한은은 왜 이같이 비관적인 전망으로 돌아섰는가. 한은은 이때 이미 금리인하를 준비하고 나름대로 시장에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달초에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은 오히려 별 내용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경제성장률은 당초보다 1%포인트 가량 낮추어 4∼5%로 전망하고 소비자물가는 4%로 올려잡았다. 다만 실업률은 당초대로 3%대에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대책도 별것 없이 시장의 불확실성 요인을 제거하고 중장기적인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등 내실을 다진다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정부는 제한적 경기조절 정책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이 전부다. 물론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정적자를 확대하거나 예산을 조기집행할 여지가 없고 더 이상 재정을 훼손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결국 정부의 경기부양은 말잔치로 그친 반면,물가안정을 책임져야 할 한은은 경기부양의 총대를 메는 이상한 역할분담을 한 것이다. 전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로 물가불안이나 부동산 등 투기부문을 과열시키는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유동성은 풍부한데 여기에다 금리인하를 통한 자금공급 확대가 물가에 영향을 주지 않고 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만을 가능하게 할지는 확실치 않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자금을 홍수처럼 퍼부어서 경기를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없지 않다. 물론 금리를 낮추고 자금공급을 늘리면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고,특히 돈 벌어서 이자도 제대로 못내는 한계기업들을 구제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모처럼 추진해 온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우려도 금리를 내린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다. 이미 금융기관들이 부실기업들의 채권을 대규모로 인수한 상태에서 올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만도 30조원이 넘는다. 이들의 차환을 지원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금융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금리인하 압력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금리인하를 놓고 통화정책의 중심이 물가안정에서 경기회복 쪽으로 옮겨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렇더라도 자금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금리인하가 과연 경기회복에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 FRB도 올해 여러차례 금리를 낮추었지만,아직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것이 우리의 수출감소 및 국내경기 침체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콜금리 인하가 경기회복에 크게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금리인하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오히려 큰폭으로 떨어졌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얼마나 늘어날지도 알 수 없다. 더욱이 내년에는 대선(大選)이 있는 해다. 정치적 고려가 금리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