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 (주)서울포럼 대표 > 요즘 신문 독자로서,또 TV 시청자로서 딜레마를 느끼지 않는 국민이 없으리라. "도대체 어느 신문을 봐야 하는 거야,도대체 어느 방송을 봐야 하는 거야? 신문 믿을 수 있는 거야,방송 믿을 수 있는 거야? 신문 믿지 말라는 거야,방송 믿지 말라는 거야?" 가장 좋기야 아예 눈 감고 귀 닫고 사는 것이다. 신문 구독 중지하고 텔레비전 끄고 살면 된다. 그런데 시청료는 전기료에 붙어 꼬박꼬박 나오므로 어쩔 수 없다. 전기마저 끊고 살 수야 없지 않은가. 신문의 경우,현실적인 방법이 있다. 요새 신문들은 대개 섹션 체제니까,정치·사회면이 나오면 재빨리 그냥 넘겨버리고,경제 문화 스포츠면만 보면 된다. TV야 어차피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많으니까 간단하다. 보도국에서 만드는 '뉴스'가 나오거나,시사교양국에서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 나오면 얼른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면 된다. 방송 특집이라면 스포츠 중계·문화행사 중계만 보거나,이산가족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 펑펑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된다. 정 볼 것이 없으면 비디오나 빌려 보자.케이블TV도 괜찮은 선택이다. 한동안 이렇게 해본다. 그러나 왠지 허전하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해진다. '나도 국민인데 이럴 수야 없지'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그래서 이번엔 완전히 반대로 해본다. 모든 신문을 다 보고,모든 방송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다 본다. 왜 이 신문은 이런 기사를 이렇게 썼는지,왜 저 신문은 저 기사를 저렇게 강조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왜 이 방송은 이런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드는지,또는 왜 프로그램들이 비슷비슷한지 분석을 해본다. 물론 방송 특집은 모든 채널이 동일하게 틀어주니까 차라리 간단하다. 비교할 여지가 없으니 오히려 확실하다. 신문에서는 왜 이런 단어를 골라 쓰고 방송 앵커는 왜 저 말을 골라 쓰는지,신문에는 왜 이런 사진이 나오고 TV에는 왜 저런 화면이 나오는지,신문에는 왜 이 인물이 나오고 TV에는 왜 저 인물이 나오는지, 신문에는 왜 이런 도표가 나오고 TV에는 왜 저런 도표가 나오는지 열심히 생각해 본다. 이렇게 하고 나면 석연치 않게 피어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다. 정말 믿을 곳 찾기 어렵다. 역시 의도 없는 행위란 하나도 없구나,사람들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정말 얽히고 설켜 있구나,또 과거로부터 자유스러운 조직은 없구나,과거를 미래의 발판으로 삼기란 참 어렵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정말 권력을 좋아하는구나,사람들은 정말 권력을 무서워하는구나,패에 속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겠구나,정말 '왕따 하기' 좋아하는구나. '왕따 당하기' 무서워하는구나,이념적이구나,같이 살기란 어려운 것이로구나,일관성이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로구나,법대로 살기는 너무 어려운 사회구나….그런데 우리 사회의 한계란 정말 여기까지일까? 확실한 적,확실한 투쟁 대상이 있던 시절이 마음은 편했었다.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적,투쟁할 적,타도할 적'이 없으면 너무 심심해하는 심리인가? 그런데 사회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법인데.다같이 성숙해지고 성장해야 할텐데 저토록 투쟁적인 모습들을 보일까-.또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도대체 그 심성이 얼마나 메말라 있으면,도대체 얼마나 불안하기에 저렇게 하는 것일까. 신문 대 방송의 편가르기,신문 대 신문의 편가르기.그 와중에 국민 대다수는 어리둥절하지 않을까. 의견 다툼이야 당연한 것이지만,마치 '언론 내란'같은 형국이니 애꿎은 신문 독자,TV 시청자만 궁지에 몰린 심정 아닐까. 차라리 신문과 방송 다 잊자.기록은 되겠지.종이에 쓰여진 글은 하드웨어로 기록될테고,방송도 시간이 간다고 흘러 없어지지 않고 소프트웨어로 기록돼 언젠가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눈 감고 귀 닫고 살자.그냥 먹고 살자.국민으로서의 기본 의무인 투표권? 차라리 포기할 밖에.국민이 되기 너무 힘든 사회다. 국민 노릇하기 정말 너무 어렵다.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