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추동물은 오랫동안 벌레라는 말로 폄하돼 왔다. 특히 지렁이와 구더기 거머리는 징그럽고 무서운 해충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거머리는 기원전 5세기 이전부터 혈액응고제로 각종 상처 치료에 이용됐다. 유럽의 경우 19세기초 남획으로 거머리가 급감하자 하노버공화국은 1823년 수출을 금지하고 오스트리아는 1827년 취급업자에게 면허증을 발급했다. 프랑스는 1833년 4천5백만마리를 수입했고 러시아는 1848년 수출 거머리에 관세를 부과했다. 지렁이 또한 꾸물거리는 혐오동물로 인식됐지만 실은 오물 분해와 토양 배양에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밝혀진지 오래다. 호주에서 목초 위에 쌓여가는 소와 말의 분비물을 처리하기 위해 유럽산 지렁이를 수입한 이래 지렁이의 막강한 힘은 세계 각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렁이를 이용해 음식물쓰레기와 오물을 처리하고 배설물을 퇴비로 판매하는 곳이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중소규모 업체만 60∼80곳에 달하고 서울시 난지 하수처리사업소에선 지렁이를 대량 사육해 분뇨찌꺼기를 줄이고 분비물을 원예농가와 조경업소에 판매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렁이로 혈전용해제를 만들어 캐나다에 수출하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지렁이는 최근 환경단체인 풀꽃세상으로부터 '올해의 자연물'로 선정되기도 했다.'근거 없는 혐오증과 모욕에 시달리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인간의 야만적인 생태계 파괴로 사라져 가는 지렁이에게 사과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이 선정 이유다. 파리 유충인 구더기 또한 혈림프에서 사페신이라는 강력한 항생물질이 발견된 데 이어 음식물 쓰레기와 유기물 분해능력이 입증됐다고 한다. 이처럼 유익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선입견과 생태계 파괴로 사라지는 무척추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에선 1986년 10개 항목으로 된 '무척추동물 유럽헌장'을 제정 공표했다. 모든 사물은 보기 나름이다. 우리도 이제 지렁이 같은 무척추동물을 무조건 쓸모없는 벌레로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