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함께 투명경영이 우리경제의 당면과제로 지적돼왔지만 현실은 아직도 국제기준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12월결산 상장사 5백74개사중 무작위로 뽑은 1백1개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3개사 보고서가 부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는 금감원 발표만 봐도 그렇다. 이같이 불성실하고 불투명한 경영자세가 바로 우리 기업들의 대외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인데도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국제기준에 따른 회계처리와 즉각적이고 성실한 기업정보 공개,그리고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 등은 세계화 시대를 맞아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모든 기업들에 당연히 요구되는 기본사항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궁극적인 경영목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국내기업들이 아직도 과거의 불투명한 기업풍토와 거래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태로서 하루빨리 시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회계기준을 국제기준에 맞게 개정하고 관련법규를 고쳐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등 정부당국도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기업의 부실·허위공시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크게 올리고 벌칙도 강화하는 내용으로 지난 4월 증권거래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기업과 관련된 풍문이나 언론보도에 대한 조회공시를 당일중에 하도록 답변시한을 단축하고, 공시의무를 강화해 누계금액 기준으로 자본금의 5% 이상이면 공시하도록 상장법인 공시규정을 고쳤다. 그러나 관련법규를 개정해 처벌을 강화한다고 고질적인 불투명 경영이 뿌리 뽑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물론 우리사회 전체가 투명한 자세를 갖도록 의식이 전환돼야 한다. 특히 불투명한 관행에 젖어 있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예를 들어 감사원이 감사보고에서 지적한 보건복지부의 의보수가 인상률 축소·왜곡 보고는 불성실공시 정도를 넘어 허위공시에 해당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기업들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정부당국도 관련정보를 신속히 공개하고 행정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