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워싱턴 중시(重視)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한·미재계회의 등 기존의 틀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가 하면 새로운 형태의 '트로이 목마'를 구축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리처드 워커 전 주한대사 등이 참여하고 있는 '한·미교류협회'라는 새로운 단체를 출범시킨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움직임은 그 좋은 사례다. 그 첫번째 사업으로 공화당의 핵심 정치인인 톰 딜레이 하원 공화당원내총무(텍사스)를 8월중 서울로 초청,한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고취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한 김 회장은 22일 특파원들과 만나 "새 협회의 교류사업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게 할 것이며 재원도 모자라지 않게 충분히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도시 워싱턴에 재계의 '트로이 목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의회보좌관들을 한국으로 초청, 한국실상에 대한 미국의회의 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인터넷회사들이 집중돼 있는 워싱턴의 특수성을 감안, 한국의 정보기술(IT)업체들은 가족의 생활근거지까지 워싱턴으로 옮겨놓고 치밀한 활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속빈 강정이 대부분인 정치인 공직자들의 워싱턴 활동과는 달리 이들 '민간 트로이 목마'들의 활동은 실질적이다. 최근에 열린 한·미재계회의의 물밑활동은 그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우자동차 인수와 관련, "GM이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는 한국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GM은 워싱턴을 찾은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지도자들에게 "가격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한국경제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설득하려 들었다는 게 이 회동에 참석했던 한 인사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한국대표인 조석래 효성회장은 "'헐값 매입'이 한국소비자들에게 잔상(殘像)으로 남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두고두고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조건 가격을 깎으려 드는 것은 현명한 접근방법이 아닐 것"이라고 '역(逆)설득'을 했다는 후문이다. GM의 향후 반응이 무엇일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GM이 곰곰 생각해 볼만한 대목을 짚어 준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민간의 '워싱턴 공략'에 보완해야할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공략목표가 일부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사들에겐 헤리티지재단 방문이 단골메뉴다. 한·미교류협회의 미국측 간사를 맡고 있는것도 헤리티지재단이다. 헤리티지는 골수 공화당계 싱크탱크다. 그러니 현 부시 행정부와 의회에 적지 않은 채널과 영향력이 있다. 김승연 회장측이 접촉하고 있는 인사들도 공화계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같은 편향된 접촉으로 "한국인들은 헤리티지밖에 모른다"는 수군거림을 듣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워싱턴에 헤리티지와 공화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과 민주당에 매달려 있던 'DJ외교'가 '공화당과 부시 시대'에 들어 큰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를 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은 여론사회다. 정치인도 중요하지만 미국 언론인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언론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워싱턴 '트로이 목마'들이 미국 언론인들까지 신경을 쓰고 있지는 못한 상태다. 정부쪽에도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부서와 인물을 찾기는 힘들다.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재계의 '트로이 목마'들이 구멍 뚫린 이 부분까지 떠맡고 나설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