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가 패션디자이너다. 화면속에서의 디자이너들은 대개가 이기적이고 개성 강한 성격에 화려한 생활을 즐기며 멋진 남자와의 연애사건에 휘말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는 디자이너들의 생활은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화려하게 꾸밀 틈이 없다. 패션업체 디자인실의 불은 밤 11시가 넘어야 꺼진다. 새벽까지 일하는 날도 허다하다. 요즘은 예전처럼 몇개월 전에 미리 상품을 디자인해 놓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상품이 매장에 걸리기 전 1주일 동안 디자인을 기획하고 생산까지 해낸다. 그래야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을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 머리 감을 시간도 없다"는 푸념은 디자이너들의 단골 멘트다. 당연히 연애할 시간도 없다. 그 때문인지 디자인실에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미혼여성들이 유독 많다. 보수도 알려진 만큼 많지 않다. 웬만큼 규모가 있는 전문회사의 디자이너 초봉이 70만원 내외.더 영세한 업체의 경우 진짜 '출퇴근 교통비 정도'만 준다. 물론 경력이 쌓이면 두배 이상으로 월급이 뛰어오르고 실장급중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정도 위치가 되려면 꽤 긴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초년병 시절에는 디자인한다는 것은 꿈도 못꾼다. 복사 등 선배 심부름과 가봉 볼 때 마네킹 대신 옷을 입고 서 있는 것 등이 주업무다. 흔히들 디자이너는 저마다의 개성이 강해 개인 작업을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팀이 함께하는 일이 많다. 너무 팀워크가 강조되다 보니 '○○사단'식의 분파가 형성되기도 한다. 디자인실장이 회사를 옮길때는 혼자가 아닌 대여섯명이 우르르 이동하는게 패션업계의 관례가 됐을 정도다. 최근 A업체의 디자인실 책임자가 B업체로 자리를 옮기면서 팀원 20여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나가 업계의 논란이 되기도 했다. B업체야 신속하게 새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어 좋았지만 A업체는 한동안 업무가 마비되는 등 큰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화려하고 멋진 의상 뒤에는 상상과는 다른 디자이너의 세계가 있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