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경기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 일본등의 철강업체는 이미 감산에 들어갔다. 수요부족에다 공급과잉으로 국제철강가격은 좀체 회복세를 타지 않고 있는데다 미국마저 철강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 탓이다. 국내 철강업계의 공장가동률은 지난 91년이후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91년 100.5%였던 가동률은 지난해 86.8%로 낮아졌다. 철강경기 침체는 수요감소에다 공급과잉이 겹친 게 주된 이유다. 핫코일을 소재로 사용하는 냉연제품의 국내 수요는 연 7백만t이나 공급물량은 1천4백만t에 달한다. 수출분을 감안하더라도 4백만t 정도 남아돈다. 냉연제품이 공급과잉이면 핫코일의 수요도 당연히 줄어든다. 고철을 녹여 철근 H형강 등을 만드는 국내 전기로업체의 사정은 더 딱하다. 외환위기를 전후한 97∼98년 전기로업체 9개사 중 5개사가 부도 또는 흡수합병됐다. 한보철강 ㈜한보 환영철강 한국제강은 법정관리 및 화의에 들어갔으며 강원산업은 인천제철로 흡수합병됐다. 설비 신·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탓이었다. 지지부진한 전기로업체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사정 역시 심각하다. 지난해 5월 t당 3백35달러선이었던 핫코일 국제가격은 올 1월 2백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5월 t당 2백15달러로 회복됐지만 아직 바닥을 탈출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 1·4분기 세계 철강수요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감소했고 올해 전체적으로는 1.4% 줄어든 8억3천2백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공급량은 9억5천만t으로 추산된다. 철강수요가 20년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까닭이다. 급기야 독일의 철강업체인 티센(TKS)은 9월까지 약 30만t의 아연도강판을 감산할 계획이다.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철은 일반유통시장으로 출하되는 핫코일량을 이달에 전달보다 50% 이상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와사키제철은 이달과 다음달 핫코일 수주규모를 기존보다 절반 가량 줄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LG투자증권의 이은영 철강담당 애널리스트는 "세계 철강경기가 10∼12개월쯤 지나야 회복될 것"이라며 "공급과잉도 문제지만 IT(정보기술) 발달로 장치산업의 성장이 둔화돼 철강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점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