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평온하던 외환시장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달러/엔 환율이 그동안 119∼121엔에서 빗장을 건 박스권 장세로부터 탈피할 가능성을 엿봄과 동시에 하이닉스 반도체를 시작으로 말만 무성하던 외국인 직접투자(FDI)자금이 유입될 기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에 목말라하고 팽팽한 수급으로 인해 지극히 안정적인 행보를 거닐던 환율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시점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주 달러/원 환율은 최근 무력한 움직임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며 1,285∼1,305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FDI자금 등의 달러공급 부담이 시장심리를 짓눌렀지만 의외로 하방경직성을 보이며 지극히 좁은 범위의 박스권을 누비던 환율은 새로운 기지개를 켜는 변수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시장거래자들은 연동고리가 다소 약해진 달러/엔 환율의 상승세를 주시하면서 박스권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지난주 환율은 1,288.50∼1,293.30원의 범위에서 대체로 1,291∼1,292원대에서 극심한 침체를 보였다. 특히 14일에는 환율 변동폭이 1.90원에 불과, 올들어 가장 적은 범위에서 등락했다. 앞선 주에서도 1,284.70∼1,286.70원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등 이달 들어 환율은 방향성, 자신감, 변동성을 상실한 채 쳇바퀴를 굴렸다. 그러나 여전히 상존한 물량부담과 달러/엔 상승, 역외매수세 등이 환율에 상반되게 작용하는데다 거래자들의 무기력증을 들어 이번주에도 종전의 박스권을 벗어나기 힘든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도 많아 방향성 설정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 "Show me the money" = 달러/엔과 함께 관심은 하이닉스 반도체가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을 통해 유치한 12억4,998만달러의 공급시기와 물량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달러공급요인으로서 시장에 반영돼 온 대규모 FDI자금이 본격적으로 공급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셈. 이미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시장에 재료로서 역할이 다한 듯한 감이 있으나 실제 물량의 공급은 수급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시장관계자들은 대체로 하이닉스의 물량중 일부가 시장에 공급될 것은 확실하지만 그 규모나 형태, 일정 등에서 변수가 많아 환율을 급격히 끌어내리는 요인으로선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하이닉스의 거대 부채와 D/A 네고자금 상환분이 많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물량이 언제 유입되느냐'와 '시장에 얼마나 환전될 것이냐'가 문제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 시장에 워낙 오랫동안 잠복하면서 반영돼 물량만 갖고는 시장에 쇼크를 주지 못해 환율이 별로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 때는 위쪽을 제한하는 경계감정도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FDI자금에 대한 기대감이 희석되는 단계에서 실제 물량이 공급돼야 시장이 반응하고 오히려 늦어질 경우 반등하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엔 악재에 따른 상승압력을 완화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에도 LG전자의 FDI자금 11억달러가 이달말에 예정돼 있고 3조원대로 추정되는 한국통신 DR발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투신과 대우차의 인수 협상도 조만간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 고개 드는 달러/엔 환율 = 지난주 말 달러/엔 환율이 123엔대로 급등했다. 특히 지난 3월30일이래 가장 가파른 기울기인 1.4%의 상승률을 보였다. 엔화는 FTSE 세계지수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와 함께 유럽중앙은행(ECB)의 시장개입 가능성 고조에 따른 유로 매수-엔 매도 거래로 달러화와 유로화에 대해 동반 압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지난주 엔화 가치는 달러화와 유료화에 대해 각각 1.8%, 3% 하락했다. 이달 들어 유로화 약세와 미 전국제조업협회(NAM)가 부시행정부의 강한 달러화 정책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일시적 강세를 보인 바 있는 엔화는 결국 일본 경제 펀더멘탈의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본은 지난주 1/4분기 국내총생산(GDP)가 마이너스성장(0.2%)을 기록했으며 오는 21일 발표예정인 정부의 경기판단도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일본은행(BOJ)가 일본 정부의 추가 금융완화에 대한 압력을 뿌리치고 기존 통화정책 고수를 결정하고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뿌리 깊은 일본 경제의 침체가 엔화 약세를 탄탄히 지지하고 있다. NAM의 강한 달러화 정책에 대한 반발과 압력은 달러화의 새로운 방향을 예고할 수 있는 변수이긴 하나 아직은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이 시장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달러/엔은 FTSE 지수의 변동가능성으로 닛케이 지수의 약세가 진전되면 124엔까지 오를 여지가 있어 뵌다. 한 시장관계자는 "NAM의 반발이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대일본 투자자산의 추가이동이 있으면 엔화는 추가 약세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며 "달러/엔이 그동안의 박스권 장세를 탈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달 1일 달러/엔이 119.20엔에서 달러/원이 1,285.40원이었으나 지난 15일 121.38엔으로 올라섰음에도 1,292원에 그친 두 통화사이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달러/엔의 오름폭만큼 같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원/엔 환율은 1,057원 수준으로 떨어져있다. ◆ 역외매수와 고점매도 물량의 출회 가능성 = 최근 은근히 시장참가자들의 촉각을 건드리는 것이 바로 '역외매수세'다. 지난 15일 역내에서는 1원을 채 움직일만한 여력이 없었음에도 역외매수의 가담으로 1,293.50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주 지속적으로 매수 쪽에 가담하고 있는 역외거래자의 의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스왑스프레드를 무시한 채 매수세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의문이다. 롤오버냐 신규매수냐를 놓고 향후 역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이 역시 달러/엔의 추가상승이 이뤄진다면 투기적 매매장세를 엿보면서 달러수요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달 말 현재 127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외화예금이 1,300원을 등정한 시점에서도 고점인식에 따라 적극적으로 출회될 가능성이 많다. 한 시장관계자는 "1,300원대에 오르면 그동안 고점매도시점을 노렸던 거주자 외화예금 입금업체들이 달러물량을 내놓을 가능성이 많다"면서도 "그러나 달러/엔 등의 대외변수 등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되면 수급이 뒤로 물러서게 돼 더욱 꽁꽁 묶여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환율은 주초에는 지난 금요일 1,635억원에 달하는 외국인의 주식순매도분을 감안하면 달러역송금 수요로 인해 상승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이며 후반들어 월말 분위기가 가미된다면 주초의 기세를 꺾는데 일조할 전망이다. 한경닷컴 이준수 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