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며칠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 8·15답방설'이 강하게 나돌았다. 민주당 한 인사가 그 가능성을 제기하자 여권내부에서 '뭔가 있을 것'이란 기대성 발언을 앞다투어 흘린 결과였다. 답방설이 다소 주춤하자 이제는 '6·15 무해통과 밀약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달초 제주 영해를 침범한 북한 선박이 우리 해군과의 교신과정에서 "6·15 북남협상시 자유항해가 결정됐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지자 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독자적으로 금강산 뱃길을 연 한 국내 기업은 공적을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퍼주기 밀약설'에 휘말리며 정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설(說)'이 많은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게 돌아가는 것을 방증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대북정책은 항상 그래왔다. 역대 정권이 이 카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작업을 비선라인을 통한 밀실에서 추진해온 결과였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첫 단추를 꿰는 과정에서 '밀실외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협상의 공개는 자칫 본질을 훼손할 수 있어 그렇다. 그러나 그 전개상황을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자연히 '설(說) 정국'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일이 잘 풀릴때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교착 상태에 들어서면 불신감을 타고 각종 '밀약설'이 횡행하게 된다. 6·15 선언 직후 금방이라도 경의선이 뚫리고 이산가족 면회소가 생겨 언제든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각종 '설'이 현실감을 갖는게 작금의 실상인 것이다. 여권은 '설 정국'을 야당의 정치공세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개연성?에 보다 무게를 두는듯 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6·15 공동선언 1주년 행사에 국민들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축배를 높이 든 후 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한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날의 감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각종 기념 행사는 북한상선의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박찬호 야구중계에 가려지고 말았다. 국내의 대표적 통일론자인 법륜 스님이 대통령과의 청와대 대화에서 "민족의 쾌거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식었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괜한 지적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면서 그 피해가 상봉을 그리는 이산가족과 대북 사업을 추진해온 국내기업들에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금강산 사업을 추진한 기업은 부도위기에 처했고,개성공단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 하고 있으나 정부는 여전히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금강산 사업을 과감히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아예 엄두조차 못내는 분위기다. 신뢰성은 정부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중 하나다.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국가기밀' 운운하며 독점하기보다는 이제 그 실상을 분명히 공개해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는게 시급한 때이다. 사외이사제를 확대하라는 등 기업들에만 경영의 투명성을 강요하지 말고 정부도 보다 투명한 대북정책을 펼쳐야 힘을 얻게 된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란 ?천수답?식 기대에서 벗어나 보다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는게 일반적 여론이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너무 애걸복걸하지 말라"는 이만섭 국회의장의 충고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