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동서문제연구원장 > 또 한번 연대파업의 홍역을 치르고 말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구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파업은 오던 투자자의 길목마저 막아버렸다. 근로자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민노총의 외침은 국민들로 부터 더욱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계나 정부가 얻은 것도 없다. 애꿎은 서민들만 병원에서,공항에서 고통을 당하고 세계속에 기업하기 '나쁜' 나라의 이미지만 더욱 굳히게 되었다. 노사현장의 민감한 사안들을 어찌 제3자가 알 수 있을까마는 월례 행사처럼 터지는 '시민 죽이기(?)'파업에 서민들은 너무 괴롭기만 하다. 거리에 나가 울분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것은 결코 이유없는 항변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파업이 많은 나라로 전락하였다. 고용된 근로자 1천명당 쟁의행위에 따른 손실일수가 지난해 1백44일을 넘어서 가히 세계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15일내외에 불과하고 우리의 경쟁국인 대만은 지난 15년동안 평균 1일도 안된다. 싱가포르 역시 0일이다. "파업해도 좋소.그러나 파업 다음 날에는 당신이나 내가 싱가포르를 떠나야 합니다"라고 경고했다는 리콴유(李光耀)의 전통 때문인가. 노동연구원이 발간한 국제통계에는 1984년 이후 주요 12개국 가운데 한국이 단연 손실일수가 가장 많은 '파업왕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87년에 무려 7백66일에 달했던 손실일수가 95년 31일로 감소했지만 98년부터는 다시 1백일을 넘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1년에도 그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 같다. 외환위기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노사의 경직된 대결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에 대한 가입률이 증가한 것도 아니다. 노동부 집계방식에 따르면 가입률은 89년의 18.6%를 정점으로 최근에는 11.5%내외에서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대만(21%)이나 싱가포르(17%)보다 현저히 낮고,독일이나 영국의 35% 수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노조 가입률은 낮으면서도 쟁의행위로 인한 손실일수는 가장 많은 셈이다. 이것은 소수가 주도하는 극한대립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물론 파업은 불평등한 입장에 놓이기 쉬운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대항수단의 하나다. 쟁의가 많다고 후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쟁의가 적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파업왕국'에서 해방되지 않고서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경제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더 이상 국민을 볼모로 하는 투쟁도 사라져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분명히 구별하는 일이다. 이것은 유치원때부터 배우는 기초교육의 대원칙이지만 아직도 어른들의 노사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합법적인 틀을 벗어난 행동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가 당연히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정부의 몫이다. 적법한 쟁의절차와 무노동 무임금 원칙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저런 이유로 탈법을 방치하며 길러준 면역효과가 노사갈등을 거리로 내몰게 한 것이다. 기업주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불투명한 경영도 아킬레스의 건이다. 불성실한 협상으로 신뢰를 저버린 기업주도 당연히 가려져야 한다. 동시에 근로자도 '해야 할 것'을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 파업은 정당한 근로자의 권리이지만,그렇다고 적법한 절차마저 무시한다면 어디서 보호받을 명분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임금협상도,근로조건의 개선도,해외인력의 고용제한도,외국기업에 결사대를 파견하는 것도 모두 명분과 논리가 있어야만 설득력이 있다. 국민도 파업으로부터 보호돼야 된다. 귀책사유를 엄격하게 가려 파업으로 인한 소비자의 손실도 누군가 보상해야 할 것 아닌가. 공익이나 독점 서비스를 마비시키는 불법은 노사 모두에 더욱 엄격히 가려져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하고,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게 해야만 파업왕국에서 해방될 수 있다. kyjeong2@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