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봄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있지만,타들어 가고 있는 것은 농작물과 농심만이 아니다. 항공사 민노총 병원파업 등 이른바 '하투(夏鬪)'로 온 나라가 타들어 가고 있다. 1년 전 감격스러워 했던 6·15정상회담과 공동선언도 말이 앞서고 실천이 따르지 않았던 과거 남북간 합의의 전철을 밟고 있어 적이 우울하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아 일어난 재앙에 대해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다. 인공강우까지 실험하게 된 현대사회에서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탓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을 믿는다. 하지만 민노총과 항공사 파업처럼,예고된 재난에 대해 안이한 대처로 일관했다면 사정이 다르다. 정부의 직무유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어우러진 이 난국에서 우리는 정치지도자에게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난마처럼 얽힌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미다스의 손'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뭄정국에 여야가 정쟁을 중지하겠다는 선언이나,여야 수뇌부가 가뭄현장을 찾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가뭄이 심하니 국정쇄신책 발표를 연기하겠다는 것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가뭄이 심하고,파업이 격렬할수록 오히려 적극적 지도력이 요청되며,특히 그러한 지도력을 대통령에게 기대한다. 그동안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해 실망했다면,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번째 이유는 정부 자신의 허물과 실패는 돌아보지 않고,남의 허물과 실패만을 꼬집어 온 것이 문제다. 기업에는 투명경영을 주문하고 족벌경영을 중지하라고 다그치면서 정부 스스로는 불투명한 정책입안과 집행,낙하산 인사,지역편중인사를 하니 설득력이 없다. '나는 바담풍 하더라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완고한 훈장처럼,남에게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나는 구태의연하게 산다면,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두번째로 정부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쓴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기보다는 나는 잘하는데 홍보가 잘못됐다고 야속해 한 것이 정부다. 지도력이 온전하려면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야당과 언론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야당과 언론의 쓴소리가 왜 '여론'뿐 아니라 '민심'에도 투영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정부의 지도력이 불신당하는 세번째 이유는 스스로의 개혁의지를 과신하는 나머지 무오류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입안과 집행에 있어 중지를 모으고,인재들을 모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도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인데,개혁에는 반발이 심하다는 이유로 혹은 개혁의 효과는 나중에 나타난다는 이유로 소수의 사람들끼리 밀실에서 결정하고 밀어붙였으니 불신을 초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실패한 정책을 두고 '대통령이 속았다'든지,'누가 대통령을 속였다'는 식의 언사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고결정자가 속았다는 말은 안쓰러운 이야기다. 또 정책실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실은 밝히지 않고 어물어물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지도력이 온전치 못하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한 사실적 진술도 없이 잘못만 했다고 하니,참회보다는 위기나 모면하고 보자는 태도가 현저하다. 그밖에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그 잘못을 고치지 않은 것도 지도력 추락의 원인이다. 그동안 야기된 정부고위직 인사파동이 도대체 몇 번인가. 문제는 앞으로도 이러한 파동이 재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로 어려운 시국이다. 이 난국을 푸는 방법은 대통령이 올바른 지도력으로 정면 돌파하는 것이며,정직과 성실한 태도로 권위를 되찾는 일이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의 올바른 지도력을 기다릴 것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