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이 현충일에 골프를 한 공직자 40여명을 해당 부처에 통보했다고 한다. "현충일은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날이고,특히 올해는 온 국민이 가뭄극복에 힘을 모으고 있는 때인데 공직자가 골프를 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사정당국의 설명은 그 나름대로 매우 설득력이 있다.그러나 그것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는 솔직히 말해 의문이 없지않다. "아마도 한동안 안나오겠지. 그러다가 또 나오고 또 어느날엔가 명단통보 소동을 되풀이하겠지"라는 정도의 반응이라면 뭔가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공공부문개혁 공직자기강확립은 한두번 들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왜 그랬을까. 보는 시각에 따라 진단을 여러가지일수 있다. 역설적일지 모르나 공직자들에 대한 '기대의 잣대'를 너무 높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기강확립이나 공공개혁이 오히려 구호를 위한 구호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충일은 근신해야하는 날''가뭄이 심한데 골프는 안된다'는 잣대가 민간기업 종사자에게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공직자에게도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기준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만약 그런 잣대를 적용하려면 그것을 공무원 복무기준 등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옳다. 정부고위층의 골프에 대한 기호나 사정당국의 자의(恣意)적일수도 있는 상황판단에 따라 명단이 통보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식의 단속은 당사자와 국민들에게 사정에 대한 불감증(不感症)만 키우게 마련이다. 공직자들에게 지켜지기 어려운 지나친 도덕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낳는 등 부작용만 결과할 뿐이다. 한동안 계속되다가 말 골프장 출입금지를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이 몇사람이나 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공무원을 일반 직장인과 다른 기준에서 생각하고 특별한 도덕적 잣대를 설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문제다. 전근대적인 관존민비적인 발상이 바로 그런데서 나온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관치금융,관주도의 경제운용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는 어쩌면 공무원과 공직업무를 보통사람들이 하는 일과는 특별히 다른 것처럼 생각하는데서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공무원업무중 정말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을 갖는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산업비서관 자리만 하더라도 그런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산업자원 정보통신 과학기술등을 관장하는 그 자리를 거쳐간 면면을 되새겨보면 하나같이 재경부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산자부와 정통부 등 산업관련 부처에서 서로 자기들 사람을 보내려고 다투다가 결국 재경부가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은 꼴이라고 한다. 그 경위야 어쨌든 그렇게 중요하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듯한 자리에 산업관련정책과 무관했던 재경부 출신이 계속 기용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그것은 대부분의 공무원업무가 생각처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직자 사회가 IMF 이후의 구조조정에서 다른 직종과는 달리 거의 무풍지대였다는 것은 일반적 인식이다, 대폭적인 감량이 단행된 금융계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민간기업과 비교하더라도 그러하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부문 평점이 수준이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다. 이는 바꿔 말하면 다음 정부에서는 공공부문개혁이 더욱 현안이 될것이란 얘기도 된다. 그러나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공공부문을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우선 생각할 것이 과감한 기구축소다. IT업무를 정보통신 산업자원 문화관광부에서 제각기 다뤄야할 까닭이 있는지,금융감독위원회는 계속 위원회 형태로 두는 것이 적절하며,여성부 해양부 등을 계속 존속시켜야 할 것인지 따져봐야할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염두에 둘 것은 공무원과 공직업무에 대한 기존관념이다. 공무원사회내에서도 일반기업에서처럼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과연 언제까지 '공직과 비공직'간 도덕적 기준을 양립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 본사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