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두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전자제품 전문 양판점인 T상가에 게임CD를 사러갔다. 아들 녀석이 요즘 아이들 사이에 인기좋다는 "디아블로2"를 골랐다. 값을 물어보니 가게 주인은 "현금내면 3만9천원,카드로는 4만원"이라고 말했다. 의아해서 다른 매장에 같은 제품 값을 물었다. 거기도 값이 두가지였다. 현금은 3만9천원으로 똑같으나 카드결제는 4만1천원. 주인은 "양판점이라 마진자체가 적은데 카드수수료까지 물면 남는게 없다"며 "이 상가안 가게 모두 똑같다"고 잘라 말했다. T상가만 그런게 아니다. 수수료전가 행위는 동대문.남대문의 패션쇼핑몰,용산전자상가,유흥가 등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상인들은 업종 특성상 높은 수수료율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테크노마트 관계자는 "가전매장의 경우 수수료율이 2.5~2.7%이고 PC매장은 3.2%인데 마진은 3%에 그쳐 역마진도 발생하고 있다"며 "제휴한 카드사들로부터 판촉기금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법을 정면으로 어긴다는데서 힘을 잃고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 3항은 "신용카드 가맹점은 가맹점 수수료를 신용카드 회원 등으로 하여금 부담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경우 1년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미만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있다. 유명무실한 법 조항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위법행위가 관행으로 묵인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사정이 또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전가를 일삼는 상가의 경우 수수료율을 낮춰줘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상인들이 카드 결제를 꺼리고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실제 이유는 세원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번 돈이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후진국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들과 자영업자들 사이에 불신의 골을 깊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국민 화합이란 거창한 정부의 구호가 씨알이 안먹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밑바닥에는 물론 공무원들의 징세편의주의와 불합리한 세제가 웅크리고 있다. 강창동 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