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 본 대지는 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다. 저수지는 메말라 물기조차 찾기 힘들어 아예 허연 바닥을 드러냈다. 굽이쳐 흐르던 강물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들판엔 흙먼지만 날아오른다. 8일 오후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들판.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가뭄피해 현장은 '까맣게 타버린 민심' 그 자체였다. 땅 위에서는 한 방울의 물이라도 찾기 위한 농민들의 노력이 계속되지만 무심한 하늘엔 구름 한점 없다. "타들어가는 논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까지 쩍쩍 갈라지는 느낌입니다" 말라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농민 유정래(52)씨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늦어도 이달말까지는 모내기를 끝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아무리 가물어도 2m 정도의 수위는 유지한다던 장신 저수지는 완전히 메말랐다. 다행히 이웃 마을 저수지로부터 먹을 물은 끌어오고 있지만 농사에는 턱도 없다. 그쪽 동네도 더이상 인심 쓸 형편이 아니고 다시 부탁할 면목도 없다. 수맥(水脈)이라도 지날 것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지하수를 파는 대형 관정(管井)공사가 한창이다. 굉음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신리 주민 모두가 나와 물이 터져줄 것을 애타게 기다린다. 벌써 5일째 접어들고 있는 공사에서 물을 찾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유씨는 "관정 공사마저 실패한다면 더는 할일이 없다"며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다. 30여 가구의 조그만 동네는 이미 일손을 접은 상태다. 이장 유대훈(45)씨는 "이웃 동네에서 물을 끌어오면 서로 물을 달라며 주민들이 몰려들어 '교통정리'하는게 일과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도 물을 차지하려다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많다. 몇해 전 홍수가 났을 때 장신리 사람들은 모두가 힘을 합쳐 물난리를 이겨낸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가뭄이다. 차라리 홍수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홍수는 그래도 사람을 묶어 주었지만 가뭄은 한마을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 댐 하나 제때 짓지 못하는 나라, 엉뚱한 사람들만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북 부안=유영석 경제부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