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의 IT정책을 두고 "혼선을 빚고 있다" "정책이 없다"는 등의 질타가 무성하다. 그러나 이같은 비난에 앞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를 냉정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통부는 정책의 리더 역할을 상실하고 있다. 흔히 산업관련 정책을 '스탁컬버그 게임'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우선 정통부가 IT 산업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정책게임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민간 기업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정책 관철능력과 소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IMT-2000 사업자 선정문제에서 보듯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비동기식이 지배적 흐름을 형성하도록 사업자 선정구조를 만들더니 이제는 동아시아 동기식 벨트를 들먹이고 있다. 국내 입장에서 보면 어제의 기존표준이 신규표준으로,아직 기술적 기반이 없는 신규표준은 하루 아침에 기존표준으로 대우받는 역전(逆轉)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환경변화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보통신 표준정책의 원칙이 없는 게 근본적인 이유다. 미국처럼 시장에 의한 '경쟁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인지,아니면 유럽식의 '위원회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통부가 안고 있는 정책적 모순도 문제다. 정통부는 현재 IT 산업의 육성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정보통신 시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역할도 하고 있다. 한 부처가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을 동시에 취급하며 어떤 때는 생산자 후생을,어떤 때는 소비자 복지를 들고 나오니 자신도 시장도 헷갈리는 것이다. IT 산업 육성정책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제는 IT로 인한 생산성이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 볼 시점이다. 미국 신경제의 생산성이 컴퓨터 반도체 등 일부 내구성 생산부문에 국한돼 일어났다는 노스웨스턴대 고돈(Gordon)의 분석은 그래서 특히 주목된다. 80%가 훨씬 넘는 나머지 산업에 신경제의 생산성이 아직 확산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산업전체에 걸쳐 IT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기초로 다음 단계의 IT정책으로 이행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핵심과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는 정통부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정통부가 'IT 기본법'을 들고 나온 것도 실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행정조직을 개편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