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미국 UCLA대학의 미식축구선수 14명이 장애인 주차장을 불법으로 이용했던 사실이 발각됐다. 언론은 톱기사로 이를 다루었고 지역사회는 이들을 매도했다. 이들은 지방법원에 기소돼 각자 1천5백달러의 벌금과 2백시간의 사회봉사를 언도받았다. 미국에서 스타가 되면 부와 명성을 얻는 동시에,'역할 모델(role model)'이라 고 불리는 반갑지 않은 지위도 부여받게 된다. 그의 일언일동은 사회의 관측대상이 되고,언론매체는 그에게 "당신은 스스로를 롤 모델로 인정하는가" 묻고 확인시킨다. 성공하여 배우고 자라나는 세대의 우상이 됐으니 본분의 역할을 하는 자,즉 귀감(龜鑑)의 위치를 자임하라는 것이다. 스타들이 농구선수 앨런 아이버슨 같이 머리를 마구 조각하거나,데니스 로드만 같이 웨딩드레스로 치장하는 짓거리는 문제되지 않는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인지라 치기(稚氣)는 있되 사회에 해가 없는 개성표현 행위로 용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음주운전 마약복용 탈세 강간 같은 범법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자그마한 반사회성의 언행이 있을 경우에도 이들은 평상인 보다 몇배 더 질책받고 처벌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타이거 우즈가 첫 마스터스를 우승한 뒤 사람 좋기로 유명한 골퍼 퍼지 죌러가 겪은 시련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기식 위트를 발휘해서 기성 골퍼를 분발시키겠다고 "다음 마스터스 대회에서도 또 저 작은 아이(that little boy)가 튀긴 닭과 멜론을 주문하는 일이 없어야…" 정도의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종비하의 농담을 한 것이 돼 여론의 모진 질타를 당하고 광고 스폰서를 모두 잃었다. 그 이래 한때 마스터스의 우승자이기도 했던 죌러의 성적은 땅에 떨어져 이제 PGA투어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상태가 됐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뜬 스타는 논어강좌로 유명해진 김용옥씨일 것이다. 이 도올선생이 어느날 '권력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TV강의를 중단한다는 말을 남기고 무단으로 떠나버렸다. 권력자의 권리는 알았는데 의무는 몰랐던가? 인간의 도리를 열강하던 스타가 스스로 보여준 언행불일치의 극치적 사례를 우리 사회는 크게 탓하지 않는다. 한국의 최대 언론매체이며 그에게 공영방송 1백시간을 할애해 준 KBS는 김용옥씨의 역할 모델적 영향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의 약속파기 행위에 대해 일절 언급·논평이 없고,어떤 법적 대응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렇게 명사 권력자가 되면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특이한 문화를 가졌다. 공권력의 행사에 있어서 보통사람과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대접의 차이가 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비리사건은 대체로 몇명의 송사리를 잡아넣고 마무리된다. 시화호이건 건강보험이건 정책실패는 실무진만 징계하도록 돼있다. 국회의원은 법원에 출두하는 법이 없고,그가 저지른 선거법위반에는 의원직 상실이 될 수 없도록 낮은 벌금형 판결이 배려된다. 명사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과거에 사회에 공헌한 분이므로' 형을 감면해준다는 기막힌 판결문이 쓰여진다. 만인의 위에 있는 사람(萬人之上)은 만인이 지켜보는 사람(萬人之目)이 되고,천인지상은 천인의 주목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이른바 지도층에 의해 설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우리사회에서 지금 유행어로 번지는 '도덕적 해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자명한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첫째,그 원천은 위에 있고 따라서 책임이고 해결책이고 위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도덕적 해이 양상이 이처럼 거론되도록 사회 지도층의 기강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따라서 이들에게 더욱 큰 책임추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윗사람을 보아주는 반상(班常)시대의 관념과 제도가 남아있는 한,그 법질서의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출세한 사람들의 위법과 비도덕행위가 장려되는 세상을 보며 보통시민이 얻는 교육이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특급스타나 공직자는 특급으로 감시하고 특급으로 처벌되는 풍토와 제도가 배양돼야 한다. 물론 그들의 가치있는 행위도 특급으로 찬양,보상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