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문건 파동으로 법무장관이 교체되고,그 보다 앞서 내정된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초·재선의원들이 제기한 당정쇄신 요구로 민주당이 내부 동요를 겪고 있긴 하지만,법무·검찰에 관한 한 이미 ''상황 끝''인 듯하다.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일선검찰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며,검찰인사위원회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검찰 간부인사가 단행됐다.

언론과 법조계는 호남편중이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야당은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의식,친정체제 구축과 정권재창출을 위한 지역편중인사라며 거품을 물었다.

국정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그리고 검찰총장까지 사정라인 요직을 호남출신이 독점한 상황에서 검찰의 핵심요직으로 통하는 서울지검장과 대검 공안부장에 호남출신이 배치되고,검사장 승진자 6명 가운데 호남출신이 절반을 차지했으니,인사시비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언론은 벌써 신승남체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선 인사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다.대한변호사협회가 신임 검찰총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새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촉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의 검찰중립에 대한 단호한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출신지가 호남이니 영남이니 하는 것만 가지고 논단할 일은 아니다.오히려 적당주의 안배인사의 폐해가 더 클 수도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인사청문없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임명됐고,간부인사가 투명하고 공개적인 검찰인사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이뤄졌다는 증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데 있다.

전임 법무장관 부근에서 나온 ''대통령님의 태산같은 성은''등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어휘들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사람들은 그래서,이번 인사의 염치없는 호남편중을 보고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숱한 논란과 이유있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임 검찰총장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의 임기 중에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옷로비 사건,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의혹,4·13총선관련 선거사범 수사,한빛은행 및 동방·대신금고 불법 대출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치욕의 터널에서 불신과 의혹,경멸을 받았던 검찰이 거듭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검찰을 독립시키는,독립운동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는 어쩌면 정치와의 잘못된 만남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법무장관은 몰라도 신임 검찰총장은 그를 임명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까지 재직하게 될 것이다.

불가불 임기말의 권력누수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으로부터 레임덕현상을 극복하고 ''권력을 통한 안정''을 확보해달라는 주문이 올 것이다.

임기 중에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으니,집권세력으로부터 정권재창출에 적극 기여해 달라는 압력이 올 것이다.

검찰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지 최대의 시련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검찰이 이런 압력과 도전을 능히 견뎌낼 수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법무·검찰의 최고사령탑이 한꺼번에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반 정도 남은 것을 생각하면 한심하다 못해 딱한 일이었다.

갈 길은 바쁜데 돌부리에 걸려 자꾸만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법무·검찰의 문제는 옷로비사건에서 여실히 나타났듯이 김대중정권의 악연이자 아킬레스건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어느 시대의 몇십년에 해당할 개혁의 시간을 허비하고 허둥대다 결국 법무·검찰 부문을 개혁의 무풍지대로 방치하고 마는 우를 범했다.

만일 그런 결과를 미필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법무·검찰 권력의 정치적 효용에 혹해 개혁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면,이제 정신을 가다듬고 자문해 봐야 한다.

과연 법무·검찰 부문에 제대로 된 개혁이 있었는가.

이제 또 다시 정권재창출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이들을 사역해야 한다는 유혹이 찾아들 것이다.

김 대통령은 능히 이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가.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