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나는 입이 짧은 아이가 아니었다.

가난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던 부모님 세대는 음식을 가려먹는 것을 죄악시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먹을 것을 안 먹고 투정부리는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라고 싫어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음식이 없을 리 없다.

나는 카레를 참 좋아했지만 카레 안에 든 당근은 싫어했고,미역국에서는 미역을 빼고 고기와 국물만 먹고 싶어했다.

어른들이 먹지 말라는 불량식품은 모두 맛있었고,물은 없어도 되지만 콜라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도시락 혼분식 검사가 살아있던 시절이었지만,우리는 음식의 맛과 더불어 한국 사회가 경제발전의 결과로 누리게 된 풍요도 함께 맛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음식의 귀중함을 가르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소풍갈 때 도시락은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거니까 남기면 안되고,음식은 골라먹으면 안된다는 말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선생님이 보이는 것도 아니니 늘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게 마련이었다.

소풍을 갔다 온 다음날이었나 보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가 문득 "옛날 이야기를 해주겠어요"하고 말했다.

아이들의 눈이 단박에 초롱초롱해졌고,선생님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옛날 어느 바다 한가운데에 섬이 하나 있었어요.

그 섬에는 고기를 많이 잡아서 부자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그 사람들은 굴비 껍데기에 밥을 싸먹는 걸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굴비를 구워 껍데기에만 밥을 싸서 먹고 살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렇게 몇년 지나고 나니까 굴비가 부족해졌어요.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굴비 껍데기만 먹으려고 고집을 부렸어요.

굴비 껍데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결국 이 사람들은 밥이 많이 있었는데도 굴비 껍데기가 없어서 굶어죽고 말았어요"

지금 생각하면,어린아이에게 들려주기에는 좀 엽기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 굴비 껍데기로 밥을 싸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신기했고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 이야기의 뜻을 깨달은 것은 근 15년이 지나 움베르토 에코의 수필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이라는 짧은 수필을 읽으면서였다.

에코는 2센트짜리 아이스크림 콘 두개와 4센트짜리 아이스크림 파이 중에서 어린아이들은 2센트짜리 아이스크림 콘 두개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어른들은 아이스크림 파이를 사주려 했다고 회고한다.

같은 값이었지만,어린아이들은 2센트짜리 아이스크림 콘 두개를 양손에 들고 번갈아 핥으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맛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이 그런 느낌을 맛보는 것을 싫어하고,검약과 절제를 배우기를 바랐던 것이다.

굴비 껍데기로 밥을 싸먹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밥을 사치스럽게 먹으면 언젠가는 ''굶어죽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선생님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남들과 다른 사치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맛없고 비린 굴비 껍데기로 밥을 싸먹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이제 당근이 들어있지 않은 카레가 맛없게 느껴지고,미역국 국물보다 미역이 더 맛있는 나이가 왔다.

내가 하는 밥보다 남이 정성들여 해주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깨달으면서 새삼 ''외식하지 말고 집에 들어와 밥 먹어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다시 듣고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세끼 식사가 사실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고마운 것인지 알게 되면서,옛날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사회의 사치와 낭비들에 분노하기도 한다.

디지몬 캐릭터 카드를 얻기 위해 빵을 사서 먹지 않고 버리는 아이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수천만원짜리 수입품을 마구 사대는 어른들까지.

그러면서 때때로 이제는 성함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을 생각한다.

내게 굴비 껍데기에 밥을 싸먹는 바보같은 사람 축에 끼지 말라는 교훈을 처음으로 주신 그 선생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