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첨단기술기업들 사이에서 곧잘 회자되는 두가지 법칙이 있다.

자사의 혁신제품을 폐기시키는 당사자는 바로 자신이 돼야 한다는 데이비도(Davidow) 법칙이 그 하나다.

뒤집어 보면 자사의 혁신이 경쟁기업에 의해 폐기를 강요받게 된다면 그만큼 시장지위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보그(Borg) 법칙이다.

선도기업의 장점을 흡수하고 확장해 추월한다는 전략이다.

웹브라우저의 장악과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네스케이프를 물리칠 때 사용한 전략으로 유명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이 두 법칙은 시장과 경쟁환경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하고 연속적인 자기혁신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자신의 혁신에 스스로 발이 묶여 곤란을 겪거나,방심하다가 후발기업에 추월당할 위험에 처한 기업들을 발견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쩌면 제록스도 그런 기업중 하나일지 모른다.

한가지 일만 하다가 새로운 시장기회를 놓친 기업.휴렛팩커드(HP)가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레이저 프린터 회사로 성장하도록 허용해 버린 기업.포천이 ''올해 최악의 이사진을 둔 6대 기업''의 하나로 선정한 기업.바로 제록스에 붙어 다니는 오명들이다.

이런 제록스가 지금 직원들에게 화초를 가꾸게 하는 등 자린고비 경영을 하면서 구조조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제록스 중앙연구소인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연구센터(PARC)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자체의 미학(美學)''을 상징하던 대기업 중앙연구소가 ''시장을 향한 기술연구''의 전진기지로 바뀌고 있다.

제록스가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멀티미디어 전자종이 등 디지털문서 개발의 핵심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은 그 어느 때보다 사업부서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새로운 기술 때문에 제록스에 사업부서가 신설되는가 하면,외부 투자자나 파트너와 함께 분사화(spin-off)가 일어나기도 한다.

기술적 라이선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팔로알토 중앙연구소의 이런 변화가 모기업 제록스에 부활의 씨앗을 제공할지 주목된다.

샌프란시스코=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