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수 전 법무장관 사건이 조기에 마무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현정부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질과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단면이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현실을 한 차원 높은 미국의 그것과 비교해 보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뿐 아니라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다.

워싱턴에서 식당을 경영한다는 한 교포가 "다른 것은 다 접어두더라도 민주당 박상규 사무총장이 국민 모두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고 말할 정도로 이번 사건은 해외교포들에게도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우리가 미국을 부러워하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미국인들의 실천력보다 더 부러운 것은 없다.

대통령이 법무장관의 준엄한 조사를 받는 예를 다반사로 보아 온 미국인들로서는 너무 당연한 인식인지 모른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8년동안 법무장관으로 일했던 재니트 리노 전 법무장관의 법수호원칙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섹스 스캔들만 다섯 손가락으로도 부족했던 클린턴은 그가 아칸소주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1978년 화이트 리버라는 강에 인접한 2백30에이커의 별장용 토지를 매입하면서 자신의 직위를 남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화이트워터 스캔들''로 시달리고 있었다.

클린턴은 당시 변변한 재산을 형성하지 못했던 젊은 검찰총장(후에 주지사가 됐지만)에 불과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클린턴이 이런 대형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 많은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었다.

결국 클린턴은 자신이 임명한 리노 법무장관의 손안에서 벌거벗은 신세가 되어야 했다.

임명권자에 대한 리노의 보이지 않는 선처(?)가 작용할 법도 했지만 리노의 입장은 얼음처럼 냉정했다.

"한점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리노는 로버트 피스크를 특별검사로 임명하면서 ''철저한 조사''를 외친 차디찬 완벽주의 법무장관이었다.

클린턴의 시련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부인인 힐러리가 백악관 여행업무를 담당하는 관료 7명을 무더기로 파면하면서 클린턴의 먼 친척인 캐서린 코넬리우스를 대신 그 자리에 임명한 이른바 ''트래블 게이트(Travelgate)''를 자초했다.

법 집행총수로서의 리노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외쳤다.

백악관인사의 정실 또는 불공정사례를 파보려는 그녀의 사심 없는 법집행 자세가 클린턴에 대한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섭섭했던 백악관이 리노에 대해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냐.친구냐 아니면 적이냐"는 볼멘 소리를 하자 "나에게 누구의 편이란 있을 수 없다.그저 ''법(法)편''일 뿐이다"라는 게 리노의 답이었다.

백악관 관리들로부터 미운 오리 새끼이자 고집센 늙은이로 ''왕따''당하고 있었지만,리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법무장관에 지명한 존 애시크로프트에 대한 상원인준을 저지하려 했던 미국 진보세력들의 저항운동 또한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법무장관에 대한 기대와 인식이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다.

애시크로프트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가 사형,학교에서의 기도, 그리고 국기손상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을 지지하는 반면 낙태를 반대하는 극단적 우익이라는 점을 문제삼고 나왔다.

결국 미국인들의 법무장관 자격요건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어떤 형태로 소화하고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신승남 신임검찰총장과의 역학관계를 따져 신 총장에게 장애가 되지 않을 사람을 고르는 정도의 유치한 발상을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