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썼을 때 ''정말 그렇다면 내 성을 갈겠다''고 항변한다.

가난한 사람이 괄시당하면 ''가난한 놈은 성도 없나''라며 화를 낸다.

한국인에게 성은 아직 가문의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고 이름과 함께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서양 여인들처럼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거나 일본인들처럼 데릴사위나 양자로 간다 해서 성을 바꾸지도 않는다.

부자지간에 성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일제의 창씨개명 때 ''내 대에 와서 성을 가니,나는 개자식이다''해서 ''이누코(犬子)''라고 창씨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도 성을 바꾼 예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형제간에도 자손이 없을 때 3세 이전의 버린 아이(유기아)를 거두어 자기의 성을 주고 수양자(收養子)로 삼았다.

유산도 물려 받아 친자식이나 다름 없이 대를 이어 갔다. 처족의 경우도 3살 전에 거두어 성을 바꾸어 길렀다.

조선 태조때까지 관행처럼 유지돼 오던 이 제도는 ''경국대전'' 편찬으로 이성(異姓)양자의 개념이 확립돼 3세전에 거둬 기른 수양자 라도 유산은 물려줘도 성을 바꾸지는 못하도록 했다.

고려때처럼 수양자를 ''동기자(同己子)''라고 해 역시 친자식과 같이 보고 있다.

수양자를 없애버린 것은 일제때인 1915년이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간 아이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받게되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것을 막기 위해 만 7세 미만이면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한 친양자법(親養子法)이 국회 법사위에 3년째 계류중이라고 한다.

동성동본금지조항 삭제나 6개월의 여성재혼기간설정 폐지가 유림의 반대에 부닥쳐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벽이 높다는 생각도 들지만 수많은 양자들의 건전한 성장과 복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선결과제다.

이혼과 재혼이 많아지는 것이 도덕적 타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림의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사의 큰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

''도(道)에도 오르내림이 있고,인간사는 속(俗)으로 말미암아 개혁된다''는 선현의 옛 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