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과 ''빨간신호등''.

요즘 기업개혁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상반된 시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기업경영을 자유방임할 경우 음주운전처럼 위험하다는게 정부의 주장이고,규제라는 빨간신호등이 너무 많아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생각이다.

양측이 이런 입장을 갖는데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국민의 정부''는 IMF위기의 주요 원인을 기업들의 지나친 양적 팽창과 재무구조의 불투명성 등에서 찾았다.

때문에 지난 3년간 ''순환출자를 억제하라''''재무구조를 개선하라''는 식의 이른바 ''5+3''이란 8계명을 내세워 경영활동을 규율해 왔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새로운 잣대도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규율''을 ''규제''로 보고 있다.

그 뜻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사업의 성격과 경영 전략이 각기 다른 기업들을 같은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런 생각은 최근들어 재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과 정치권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집권 민주당이 지난 17일 발표한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0%가 재계가 요구하는 규제완화를 탄력 수용해야 한다고 밝힌게 그 예다.

같은 날 여권의 대표적 차기 대권주자인 이인제 최고위원도 "정부가 기업활동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으로 비쳐져선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주말동안의 여·야·정 합숙토론회나 지난 15일의 정·재계간담회에서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그렇다면 정부측은 ''방향전환''이란 용기를 보여줘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현 정권이 ''개혁''이란 명분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있는게 그 이유다.

''출자제한 25%''''부채비율 2백%''''30대 기업집단''이란 틀은 그대로 유지한채 예외조항의 확대를 통해 기업들의 불만을 무마하겠다는게 정부의 굳건한 입장이다.

설령 예외규정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5+3''의 대원칙이 빈껍데기로 전락되더라도 개혁이란 ''무늬''는 지키겠다는 강박관념이 다분히 담겨 있는 듯 하다.

이는 얼마전 벌어진 개혁속도 논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민주당과 재계에서 ''마무리론''이 제기되자 청와대측은 즉시 이를 진화했다.

심지어 민주당내 한 최고위원은 "개혁이란 용어 대신 변화란 말을 쓰자"는 대안까지 제시했으나 청와대는 박준영 대변인의 입을 통해 개혁지속론을 거듭 강조,속도논쟁이 끝내 물밑으로 잠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개혁이란 말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 있는 ''국민의 정부'' 입장에서 개혁 마무리 또는 수확론이 안팎에서 거론된데 대해 불쾌감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지난 3년간 ''개혁''을 앞세워 앞만 보고 달려온 사실을 감안하면 재계와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속도조절론은 적절한 시점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다.

2년에도 못미치는 현 정권의 잔여 임기는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기에도 짧은 기간이다.

교육개혁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고 의약분업은 그 방향이 어디로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하다.

기업은 정치권의 흥정대상이 될 수는 없다.

개혁이란 정치적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낡은 틀을 그냥 둔채 지엽말단적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폐지까지 검토하고 나선게 지구촌 경제의 실상이다.

기업 경영을 ''음주운전'' 정도로 치부하지 말고 "기업의 앞길에 빨간 신호가 너무 많다"는 재계의 얘기에 귀 기울일 때가 된 것이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