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 한나라당 국회의원 YIM@manforyou.co.kr >

얼마 전 필자는 요즘 항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상가 임차인보호를 위한 법 제정 문제와 관련해 찬반의견을 묻는 설문서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가 한동안 ''서민들이 대부분인 임차인보호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분류(?)돼 아주 곤혹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경위는 이랬다.

필자는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법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성급히 법을 제정하기보다 임차인이 거래관계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이것이 바로 반대입장을 밝힌 것으로 되어 버렸던 것이다.

분명 필자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많았는데 그 분들에겐 아무 일도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했는데 후에 우연한 기회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이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똑같은 입장을 두고 필자는 이를 조건부 반대로,다른 분들은 조건부 찬성으로 생각하고 각각 설문서의 반대와 찬성 난에 동그라미를 쳤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법 제정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직접 만나 충분한 대화를 가지고 나서는 필자도 그 분들의 입장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분들도 필자를 이해하게 되어 결국은 훨씬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지극히 평범하고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 귀한 지면을 통해 구태여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경험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양분법(兩分法)적 사고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에서다.

정치에 몸담은 이후에는 특히 절묘한 의도를 밑바탕으로 한 양분법의 틀 속에서 다양성과 독창성이 그대로 사장돼 버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왜 이렇게 우리 사회는 이것 아니면 저것,나(我) 아니면 너(他),동지 아니면 적,흑 아니면 백으로 양분을 강요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들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양쪽 끝에 이(理)와 기(氣)를 놓고 그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나름대로 독창적인 관점을 가지고 치열한 이기논쟁(理氣論爭)을 벌였던 선현들께 부끄럽기까지 하다.

흑과 백 사이에는 어떤 색들이 또 있을까.

불투명한 회색대(灰色帶)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무지개색도 존재한다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