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 북한방문 예정''이란 일부 언론의 보도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북한측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빈소에 조문사절단을 보내준데 대해 답례차원의 방북을 추진중이란 내용이었다.

잘못된 보도로 판명되긴 했지만 당시 시장의 반응은 너무나 즉각적이었다.

현대차는 "밑빠진 독에 왜 돈을 쏟아부으려 하느냐"는 투자자들의 거친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시장은 주가를 끌어내림으로써 현대차에 대해 대북사업은 꿈도 꾸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이다(현대차 주가는 ''정 회장의 방북''이 오보로 확인된 뒤에야 상승커브를 그렸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 소유의 e삼성 주식을 사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식을 비싸게 매입함으로써 이 상무보를 간접 지원한게 아니냐며 투자자들은 강력 반발했고, 그 결과는 e삼성 주식을 매입한 삼성물산 제일기획 등의 주가급락으로 나타났다.

LG전자는 LG텔레콤의 유상증자 참여로 엄청난 눈총을 받았다.

투자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LG텔레콤에 자금을 지원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LG전자는 더 이상의 출자는 없다는 약속으로 시장의 항의를 간신히 무마했다.

요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대기업집단지정제도 등 대기업 정책을 둘러싼 재계와 정부간 논쟁이 치열하다.

재계는 이들 제도가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기업의 투자 및 사업구조조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정부는 대기업의 폐해인 ''문어발식'' 확장이 다시 나타나고 있어 폐지는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문어발에 이어 낙지발 폐해론까지 내놓은 터다.

지금 재계의 주장이 옳은지,정부의 반론이 타당한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시장에 맡겨두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갖고 왜 정력을 낭비해가며 왈가왈부하느냐는 얘기다.

현대차 e삼성 LG전자 등의 경우가 말해주듯 이미 한국의 ''시장''은 기업이 수익성에 반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가차없이 응징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있다.

삼성계열사의 e삼성 주식 매입과 LG전자의 LG텔레콤 증자 참여에 대해 시장은 ''출자총액한도''라는 제도적 장치와는 무관하게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기업이 ''허튼 일''을 하면 그렇게 시장이 먼저 브레이크를 건다.

시장의 제어기능을 염두에 두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명해진다. 바로 그 ''시장''이 답이다.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주가가 비싼 기업은 출자총액한도를 넘었든,넘지 않았든 경영을 잘하는 기업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입맛에 맞느냐,맞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 요소가 아니다.시장에서 신뢰받지 못하면 정부정책을 아무리 충실하게 따르는 기업일지라도 결국 퇴출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정부는 몇몇 관료집단의 머리로 설계한 질서를 시장에 강요하기보다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 그 장애물 중에는 정부가 만든 규제도 적지 않다.

시장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이 유통된다.

시장은 수십만, 수백만의 참가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평가한다.

잘못은 아무리 숨기려해도 감춰지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의 기능을 대신하려 들거나,시장 메커니즘에 개입하려 해서는 도리어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시장에 맡겨두면 그만인 것을 굳이 정부가 챙기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 관료들이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규제를 풀지 않는다는 ''오해''만 사게 된다. 더 나아가 문어발식 낙지발식 간섭이라는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

hee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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