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한국 조선업계를 정부보조금 지급에 관한 불공정무역 혐의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키로 사실상 결정했다는 소식은 ''올해는 통상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미국 일본에 이어 우리의 3대 교역상대인 EU와는 지금까지 비교적 원만한 통상관계를 유지해온 터여서 이번 조선분쟁이 제소와 맞제소로 결말을 보게 된다면 양측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U집행위가 오는 14일 열리는 EU이사회에 제소를 권유키로 결정했다지만 막바지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WTO까지 가지 않고 해결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행위의 결정은 유럽조선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5개월동안 직접 조사를 벌인 끝에 나온 것이어서 제소는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미국 부시행정부로부터의 무차별적인 통상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 EU와의 통상관계마저 악화된다면 우리의 수출은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업계는 이번 조선분쟁이 자칫 전반적인 통상마찰로 비화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U측은 특히 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조선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덤핑수주를 가능케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당당한 대응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당시 대우 한라 등 몇몇 부실 조선업체들이 금융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채권은행의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음을 주지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또 한국이 세계 조선시장의 35%를 차지하는 선두업체로 도약한 것은 환율상승과 기술력 생산성 향상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덕이지,EU의 주장대로 보조금에 바탕한 덤핑수주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실제 제소가 된다해도 조선업계에 당장 큰 파장은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장담하고 있지만 만약 패소라도 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채무조정 방식으로 진행돼온 기업구조조정 전반이 부당한 정부보조금 시비에 휘말릴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와 업계는 ''공격적 통상외교''노선에 바탕을 둔 강력한 대응책도 마련해야겠지만 EU가 제소를 하더라도 WTO가 분쟁심사를 끝내기까지는 1년여의 시일이 걸리는 만큼 그동안 끈질긴 협상과 설득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