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사한 봄날 아침 어떤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 변고가 생겼어.아침에 행장이 불러 갔더니 임원 모두를 교체하고 오늘 중으로 새로 구성한다는 거야.조금 전 통보받을 때까지 아무도 몰랐어.이유도 잘 모르겠고….지금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어"라는 것이었다.

30여년 열심히 일해 지난 해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한해가 겨우 지나자 그만 두게 됐다니….신문을 보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조직을 장악하기 위해서''''임원이 피곤한 상태여서''가 이유라고 했다.

분위기를 바꾸고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인재의 낭비가 심하고,피곤해도 일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그렇게 쉽게 줄 수 있는 현실이 야속했다.

이유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그만 두게 됐으니 할말도 많고 한도 남겠지만,수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밀려나는데 누군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으랴.

우리는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집은 불타고,남자는 죽고,여자는 욕을 당하는 고난의 역사 속에 살아 왔다.

그래서 한이 많고,가무음곡(歌舞音曲)을 좋아하며,종교적인 민족이라고 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노래방이 있고,관광버스 속에서도 춤추고 노래한다.

많은 교회의 부흥회나 새벽기도에서는 주위의 집 값이 떨어지도록 통곡하며 소리질러 기도한다.

우리와 유대인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수천년을 나라 잃고 세계를 유랑하면서 한 많은 역사를 살아온 유대인들도 가무음곡을 즐기고,통곡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해 예루살렘의 파괴된 솔로몬성전 벽은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교육열도 비슷해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를 보면 ''공부해라''하는데 뉴욕의 한국 어머니들은 아기를 낳자마자 ''하버드!''한다는 말이 있다.

고난 속에 살면서 이 세상의 시름을 잊기 위해 가무음곡을 좋아하고,저 세상에 가서라도 잘 살아 보기 위해 신앙심이 강하고,당대에 못 이룬 한을 자식을 통해 풀어보려고 교육열이 강한 것이리라.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민초들이 죽어갔을 때,토정 이지함 선생이 지은 ''토정비결''은 민초들의 토속신앙이 됐다.

조선말 외세가 밀려와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최제우(崔濟愚)선생이 창시한 ''동학''은 10년도 안돼 삼남을 휩쓸고,''동학란''이 일어났을 때는 관군이 막기도 어려웠다.

일본의 가혹한 식민통치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기독교 선교를 성공하게 했고,백만 넘게 죽고 천만이 생이별한 6·25전쟁은 우리나라에 부흥회와 새벽기도를 번성케 해 기독교를 크게 부흥시켰다.

지금 도올 김용옥의 KBS TV ''논어강의''는 인기가 대단하다.

''노자강의''때부터 일기 시작한 열기는,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짱구머리를 내밀고 장난기 어린 눈을 굴리며,쇳소리로 악을 쓰는 도올의 강의는 하여튼 재미있는 ''철학 개그''임에 틀림없다.

딱딱한 고전철학이 세계 어느 나라에 이렇게 대중적 인기를 모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누가 뭐래도 철학을 대중화한 도올의 공로는 크다.

도올을 비판하는 서적도 불티나고 있다.

주부 철학자 이경숙이 도올의 강의를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비판한 ''노자를 웃긴 남자''도 베스트셀러다.

''도올은 환장기가 있다.

간이 안 좋거든.암컷이라든가 여자만 나오면 그냥 환장하는 거야.암컷이 나오고 골짜기가 나오니까 도올의 ???속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게 뭐였겠어''등 원색적인 ''엽기 개그''도 곁들인 이 책을 읽지 않으면 후회하리라.

IMF환란 이후 ''조직장악''이란 이름으로 또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생사람도 밀어내며 인재를 낭비하는 것은,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에 큰 비용을 안기고 많은 반작용도 일으키는 일이다.

도올이 뜨는 것은,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금 철학에 대한 수요가 그 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밀려나 오라는 곳 없는 수많은 실업자들에겐 기댈 수 있는 신앙이나 철학,하다못해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도올이 뜨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mskang3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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