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이사 park.seong-joon@bcg.com >

기원전 255년 로마군은 바다 건너 아프리카 대륙의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하던 중 이탈리아 반도 남단 시실리섬 근해에서 큰 폭풍을 만났다.

항해 경험이 많은 선원들은 폭풍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안선에 너무 접근하지 말고 항해할 것을 주장했으나 로마장군들은 이를 무시하고 함대를 해안에 접근시켰다.

결국 로마군은 해안 절벽과의 충돌 등으로 2백30척의 함선 중 1백50척과 타고 있던 병사 6만명을 잃는 유례없는 해난 사고를 당했다.

해가 바뀌어 기원전 254년 로마는 2백20척의 선박을 동원해 시실리섬에서 카르타고군과 다시 조우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전쟁을 지휘한 로마군의 최고 지휘관 3명 중 2명이 1년전 잘못된 판단으로 부하 병사 6만명을 수장시킨 장본인들이라는 점이다.

패장을 벌하지 않고 다시 지휘를 맡기는 것은 로마군의 전통이었다.

로마가 큰 실책을 범한 장군을 다시 기용했다는 사실은 로마의 정책결정기구가 과거에 있었던 오판의 원인과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로마인들이 냉정히 진실에 도달하고 그 결과를 향후 정책수립에 반영했던 일련의 과정이 미국의 의회청문회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 근거는 로마의 전통이 서구문명의 한 기둥이라는 원론적인 이유 외에도 미국 상원의 원형은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두 기구의 성격이나 운영 방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미국의회 청문회는 첨예하고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성이 오가지 않는다.

일회성 징벌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데 초점을 둔다.

우리에게도 정책 판단의 실수를 검토하는 제도장치는 있다.

그러나 그 초점은 마치 잘못을 책임질 최고 책임자를 규명하고 그를 사임시키는 것에 있는 듯 느껴진다.

우리도 책임자를 물러나게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 그에게 끝까지 문제를 맡기고 해결하도록 책임지우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