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10년전에 쓰던 낡아빠지고 누렇게 탈색된 취재수첩을 하나 발견했다.

1991년 중소기협중앙회 다이어리였던 이 수첩엔 약 4백80여명의 중소기업인들의 전화번호가 빽빽이 적혀있었다.

이 명단에 속하는 기업인들은 그때 한결같이 최고로 잘 나가던 벤처인들이었다.

수첩을 보자 처음엔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쪽을 넘기면 넘길수록 전율과 회한이 몰려왔다.

그안엔 뼈아픈 사연을 남긴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이 수첩의 첫부분엔 기자의 "학교 친구" 기업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기인 MI엔지니어링의 서명수(49) 사장은 당시 원적외선 건조기를 개발,일본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급성장하는 기업인이었다.

여러 언론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홍콩에 진출한데 이어 탄자니아에 현지공장 건설을 추진중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97년 물품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부도나는 바람에 도산하고 말았다.

98년초 갈끔하기로 이름난 서사장이 허름한 붉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을 찾아왔을 땐 한손에 숯불구이 버너가 들려져 있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버너를 팔아 다시 일어설테니 두고 보라"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 버너사업마저 실패했다.

그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 사업을 펼쳤다.

요즘 그는 다시 잘나가는 정보기술(IT)업체 사장으로 부상해 동창들 곁으로 되돌아왔다.

조흥은행에 다니던 박상웅(50)은 당시 동기들의 돈을 끌어모아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부품업체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판매부진으로 회사문을 닫은 뒤 종적을 감춰버렸다.

충북 영동에서 한약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들리긴 하지만 아무도 그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동창회에 나타나면 "잡아 죽이겠다"는 친구가 셋이나 있다.

의료기업체를 경영하던 이은오(49) 사장은 설비투자를 끝낸 시점에 "IMF"가 터지자 빚에 쪼들려 성남에 있는 자기 공장 크레인에 목매 죽었다.

부인과 아들 둘을 남겨놓고 자살해버린 것이다.

보다못해 동창들이 모금을 해서 전달해줬으나 요즘들어 남은 가족들의 생활이 더욱 말이 아니라는 소식만 들려올 뿐이다.

언제나 의기양양하기로 유명했던 유문개발의 문병권(49)사장은 그때 광명시에서 집적회로와 다이오드를 조립하는 첨단부품업체 사장이었다.

그는 대기업이 부품단가를 계속 내려달라는 요구에 1년간 공장에서 잠을 자면서 생산원가를 낮추는데 온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대기업측의 요구에 맞출 수 없게 되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어 토목업체를 차렸지만 건설경기의 하락으로 또 망했다.

그가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두번다시 사업을 하지 않겠다던 그가 장인이 경영하던 부천의 소신여객 사장을 맡으면서 운수사업자로 변신해 의기양양하게 친구들앞에 되돌아왔다.

지난 20여년간 중소기업을 담당해온 기자로서 요즘 급격히 부상하는 벤처기업인들을 보면 그다지 부럽지가 않다.

언제 취재수첩에서 이름들을 지워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명수 사장과 문병권 사장처럼 갖가지 고난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다시 일어나 동창들앞에 자랑스럽게 나타나는 기업인들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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