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 서울대 통계학 교수 / 자연과학대학장 >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이고,대학은 지식을 창출하는 지식산업기지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산업기지가 취약하면 지식의 공급이 원활치 못하고 궁극적으로 과학기술력이 뒤지게 돼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러면 대학에서 지식창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뿌리는 기초학문연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기초연구분야와 응용연구분야로 대별할 수 있다.

기초연구에서 원천적 지식을 제공하면 응용연구에서 이를 포장해 실전적 지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응용연구의 결과는 눈에 보이므로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쉬우나,기초연구는 눈에 잘 보이지 않으므로 간혹 경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연구가 없으면 응용연구가 불가능하므로 기초연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21세기는 또한 문화의 세기라고도 말한다.

고유한 문화의 발전없이 선진국의 대열에 들 수 없으며,국민의 삶의 질은 문화의 발전과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국민의 의식생활을 좌우하는 문화도 그 시작은 대학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과학기술과 문화의 발전은 대학에서 어느 정도 기초적 지식창출을 잘 해주고 있는가에 큰 영향을 받으며,그 정도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영향을 받는다.

기초연구의 시작은 인문사회계와 자연과학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인문사회계는 문학 고고학 언어학 철학 경제학 심리학 등을 들 수 있고,자연과학계는 수학 통계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을 들 수 있다.

혹자는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해 기초연구가 사회적 수요가 적으니 규모를 축소하거나 적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단견이다.

오늘날 과학기술과 문화는 다양화 복잡화 융합화돼 가고 있으며,새로운 영역이 계속적으로 출현하고 있고,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능력이 사회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조적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는 원천적으로 기초학문연구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계속 외국의 과학기술 지식에만 의존하거나 외국의 문화를 모방하는 데 그친다면,우리나라는 결코 인류문명을 주도하는 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응용학문은 사회적 수요가 많고 자생력이 있으므로 보호육성의 필요성이 적은 편이나,기초학문은 인기가 없고 자생력이 떨어지므로 학문의 균형발전을 위해,그리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 육성해줄 필요가 있다.

즉 학문연구의 지원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에서 교직원 수첩을 제작하면서 종래에 사용했던 배열순서(기초학문을 하는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를 앞에 배열한 것)를 따르지 않고 가나다 순서(간호대 경영대 공대 등의 순서로 배열)를 따른 것이 문제가 됐다.

총장은 이를 사용자 편의를 위한 조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초학문에 대한 종래의 배려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어느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전통이 있으며,그 전통이 불편하지 않으면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직원 수첩은 기초학문 대학을 앞에 두는 원상태로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종대왕시대에 우리의 과학기술역량과 문화수준이 외국에 뒤지지 않는 절정기에 도달한 시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결과는 세종대왕이 기초과학 기초학문을 하는 과학자나 학자들을 우대해 이들이 긍지를 갖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떠나고,대학에서 기초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제대로 연구에 몰두하지 못한다면,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

정부는 이런 점에 유의해 기초연구에 장기적인 투자를 과감히 해주기를 바란다.

parks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