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이 < 문학평론가 whitesnow1@daum.net >

5월의 초입 연둣빛 나뭇잎들의 장려한 행진이 절정에 달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도 흙내음이 번지고 나무마다 진한 수액이 가득 차 오른다.

놀랍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신록과 꽃의 행진을 펼치는 자연은 인간을 향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자연의 오염원은 중금속이나 유독물질이 아닌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인 내가 곧 오염원"이라는 말은 조금은 불쾌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의 그릇된 삶의 방식이 이 도시로부터 자연을 학살하고 추방했다.

그러나 정작 쫓겨난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간이 잃어버린 ''마음의 오지''를 찾으려는 이문재 시인은 그 추방의 현장을 이렇게 노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표고 45미터에서 잠자고,지하철을 한 시간 타고 도심으로 나와서 지상 21층에서 일하다가,점심 때는 대개 29층 구내식당에서 밥 먹고,저녁에는 간혹 지하 생맥주집에 들렀다가 곧장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그래놓고 보니,하루에,내가 땅과 구두밑창으로나마 살 문대는 시간은 평균 채 한 시간이 안 된다/지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지,땅으로부터 추방당한 지 벌써 십 년여"(''그날이 어느날''중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대지에서 쫓겨나 ''허공의 존재''가 되었다.

고대의 인간이 신의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면,현대의 인간은 자연의 낙원에서 한 번 더 쫓겨났다.

그러나 낙원의 문을 밖에서 잠근 것은 ''생명''이라는 열쇠를 손에 쥔 인간이다.

과학의 기술로 만든 이 열쇠의 문제점은 한 번 잠기면 다시 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닫힌 자연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수리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얼마 전 해외토픽에서 ''테디베어호텔''이라는 곳이 소개된 적이 있다.

이 호텔은 테디베어라는 세계적인 상표의 곰인형이 주인이 휴가를 떠난 동안 머무는 곳이다.

주인은 사랑하는 인형을 숙식과 산책 등 서비스가 제공되는 호텔에 비싼 요금을 내고 투숙시킨다.

뉴스의 진행자는 곰인형을 생명을 가진 존재로 대하는 영국인들을 칭찬했다.

그런데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생명조차도 하나의 ''상상된 허구''가 되어 버렸다는 위기감 때문이 아닐까.

생명이 그 자체로 풍요로울 수 있는 세상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