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체포된 박노항 원사를 둘러싸고 의혹이 무성하다.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국방부의 코앞에서 은신할 수 있었는지 놀랍고 또 의아하다.

그러나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신의 아들, 어둠의 자식들'' 운운하며 태연히 병역비리가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비치는 역사성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역사는 19세기 초.중엽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게 한 직접적 원인의 하나로 삼정(三政)의 문란을 지목하고 있다.

삼정이란 조선 후기 국가재정의 주종을 이룬 세가지 수취행정, 즉 전세를 부과.징수하는 전정(田政), 병무행정의 일종인 군정(軍政),그리고 춘궁기 농민에게 식량과 종자를 대여했다가 추수 후에 회수하는 구빈행정인 환정(還政)을 말한다.

임진왜란 이후 국토가 황폐해져 경작지가 크게 감소했는데도 각종 면세전이 늘고 새로운 조세가 부과.징수됨으로써, 19세기 중엽 철종 때에 이르러서는 전정의 폐해가 극도에 달하게 됐다.

환정 역시 당초 취지와 달리 농민에 대한 부담만 가중시키고 말았다.

군정 또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포의 부과.징수를 행하는 수취행정으로 변해 백성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특히 수령.아전들의 농간까지 겹쳐 죽은 자와 어린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부과징수하는 백골징포 황구첨정의 횡포가 나타나고 부유한 농민, 권문양반 등이 아전과 결탁해 군역을 면할 수 있었던 반면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징포는 더욱 가혹해지는 등 군정의 폐단으로 영조대에 균역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박노항 원사를 중심으로 자행된 병역비리는 분명 군정의 문란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군정의 문란이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바보들의 행진''이나 ''고래사냥''이란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 군대문제로 젊은이들이 고민의 밤을 지새우던 와중에 허우대 멀쩡한 장정들이 고향에 다니러 가서는 더러는 ''병역면제'', 더러는 ''방위''라는 묘한 이름의 보충역처분을 받고 돌아오던 광경이 드물지 않았다.

반정부 학생세력을 의미하는 ''ASP''란 낙인이 찍힌 동료들이 형극의 군역을 마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고향에 가서 고민을 해결한 그들을 내놓고 욕하지는 않았다.

아니 욕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덧 민주와 자유를 내놓고 이야기하게 된 오늘, 박노항 원사의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사실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밝히기 어려운 과거의 의혹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사회를 망국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부모들의 병이다.

학벌문제, 대학입시 과열과 고액과외, 고시광풍, 부정입학시비, 조기유학 등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대표하는 증후군들은 대부분이 잘나고 힘있는 부모들이 자식들까지도 대를 이어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병적집착에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강한 부모들이 자식문제에는 그리도 약한가.

미혼모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역설하던 어머니가, 미혼모가 된 여인과의 결혼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아들의 항변에 어머니는 실토한다.

''내가 내 자식 일로 겪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물론 이것은 어느 드라마의 장면이다.

자식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뇌물인들, 압력인들 못쓰겠는가.

신조의 일관성을 꺾는 일이 문제겠나.

남들도 노상 하는 일일진대 청탁은 또 어떤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거침 없는 자식사랑의 대하극을 우리는 입지전적 비결인양 ''교육열입네''하고 부러워하며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

박노항이라는 이름 석자는 바로 이 병소에서 배양된 것이다.

빗나간 자식사랑, 부와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집착, 가족 이기주의,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 가운데 잘나고 힘있는 부모들이 크게 깨달아 고쳐 나간다면 좀더 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단지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대에서 누릴 수 있었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자식들도 그렇게, 아니 더 융성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지도층이 범하는 또 하나의 잘못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그런 선택이 자식들이 살 미래까지 망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