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피셔 < IMF 수석부총재 >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경제는 매우 불확실한 시기를 맞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경기하강이 짧게 끝나 대공황으로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경제침체가 더 깊어지고 지속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국의 경제가 세계경제 또는 이웃나라의 경제 불안에 허약하게 노출돼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한 시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은 무엇인가.

IMF는 한층 강화된 "긴급 신용 제도"(CCL.Contingent Credit Line)를 통해 이머징마켓의 외부에 대한 취약성을 감소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초여건이 건전한 국가가 외부의 경제위기에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CCL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다.

지난 10년간 국제간 자금이동의 급격한 팽창은 채무자나 채권자 모두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일어났다.

많은 국가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자금이 갑자기 한꺼번에 빠져 버릴 때 신용 위기에 처하곤 한다.

경제규모가 클수록 유입되는 자금 규모도 크고 역전 현상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위기도 커진다.

금융위기는 마구잡이로 확산되지 않는다.

위기는 강한 경제체제보다는 약한 경제체제에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전염된다.

그렇다고 위기가 번지는 속도나 강도가 경제 펀더멘털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전염을 일으키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투자자들의 심리적 공황(패닉)이다.

지난 1998년 8월 러시아 금융위기가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된 것이 좋은 사례다.

이처럼 금융위기는 "정책의 취약성"이나 "과도한 전염성"으로 인해 더 빠르고 깊이 확산된다.

CCL은 "과도한 전염성"으로 인한 확산을 막기 위한 제도다.

CCL은 좋은 경제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금융위기로 인해 전염될 위험이 높은 국가들에 IMF의 금융자금을 지원해 준다.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IMF는 일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국가에 예비적인 "대출 한도액"을 제공한다.

이는 국가가 위기상황에 끌어다 쓸 수 있는 외환보유고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늘려 주게 된다.

CCL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환투기 공격을 막아주고 위기 발생시 투자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돈을 빼내는 위험성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

CCL은 IMF 금융정책의 중요한 변화다.

IMF의 자원을 기존처럼 위기가 발생한 후에 해결하기 위해 지원하기보다 위기를 사전에 막는데 쓰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CCL에 대한 우려 가운데 하나는 "모럴 헤저드"다.

지원받은 국가가 CCL을 믿고 잘못된 정책을 계속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CCL은 엄정한 심사를 통해 "일급" 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중기적으로 재정 균형을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고 금융부문의 건전화와 국제화가 일정 기준 이상으로 이뤄져야 CCL의 혜택을 볼 수 있다.

CCL을 우려하는 또다른 시각은 이 제도를 신청할 경우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해당국이 금융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국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외국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하고 바로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금시장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CCL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해당국의 경제가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할 만큼 튼튼하다는 것이고 저렴한 비용으로 외환보유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CCL은 장기적으로 국제 사회의 위기 예방능력을 높이고 각 국가의 전염 방어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가치있는 제도라고 확신한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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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가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카 중앙은행총재및 재무장관 회의"에서 연설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