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 (주)서울포럼 대표 >

경제신문이 좋은 이유라면? 물론 경제가 좋아서는 아니다.

춤추는 증권시장이 아슬아슬하고,기업 부도 뉴스가 아찔하고,수출 감소에 찌푸려지고,늘어나는 실업에 한숨 짓게 되는 시절이니 말이다.

경제뉴스라면 혹시 좋지 않은 뉴스나 아닐까 싶어서 가슴부터 두방망이 쳐지는 시절이다.

그래도 경제신문이 일반신문보다 좋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라면 물론 정치 기사가 적기 때문이리라.정치 기사라도 ''요점만 간단히''이니 그저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

시시콜콜 뒷이야기나,유쾌하지 못한 에피소드를 알 필요도 없고, 특히 온갖 방향의 군더더기 해석을 볼 필요가 없어서 좋다.

둘째,경제신문의 언어는 감정적이지 않아서 낫다.

좀 드라이하다 싶을 정도의 경제신문 언어는 일반신문에 등장하는 온갖 감정적인 어휘와 어법에 비교해 보자면,그 드라이한 점이 오히려 청량하게 느껴질 정도다.

셋째,경제신문에서는 비판이라는 명제 하에 서로 물어뜯는 기사나,매체들 간의 신경전을 볼 필요가 없다.

요사이의 일반신문과 방송.이 말도 그럴 듯하고,저 말도 그럴 듯한 논리가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경우보다는,''왜 이런 판이 벌어지나,이것이 이렇게 중요한가''하는 의문이 생기는 적이 더 많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찜찜해진다.

넷째,경제신문은 ''특종 터뜨리기''''이슈 만들기'' 같은 집착이 없는 것 같아서 좋다.안그래도 특종감 이슈감이 너무 많은 사회라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사회 아닌가.

솔직히 톱뉴스감이 없는 사회면이면 좋겠고,신문이든 방송뉴스든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경제신문이라 해서 비판할 점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경제활동을 격려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해서 그런지,경제신문에는 기업활동이든 기업가든 부동산개발이든 ''미화하는 조''의 기사가 많은 편이다.

정부의 정책부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서 그런지,경제신문의 정책 비판은 상대적으로 뜨뜻미지근한 편이다.

특히 경제신문은 경제정책 산업정책 기술정책 같은 전문정책에 대해 끈기있게 다뤄야 할 것 같은데,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부족해 보인다.

경제신문의 진단과 제안이 우수하다고 해서 경제위기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그래도 아쉽긴 아쉽다.

군더더기가 없고,감정적이지 않고,세파에 다소 초연하고,객관적인 편이어서 경제신문이 좋다고 해도,여전히 경제신문만 가지고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사회에는 군더더기로 보이는 것도 필요하고,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으며 세파란 엄연한 현실이고,주관없는 객관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어떻게 조금 더 유쾌해질 수 없을까.

경제가 나빠서 현실 그대로만도 힘든데,어떻게 좀 더 유쾌한 언론을 즐길 수는 없을까.

시시콜콜 뒷이야기나 방편적인 해석보다는,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사실은 사실로서,해석은 해석으로서 분명히 구분한다면 조금 더 정론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언론이 아니라 차라리 ''실록''만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에 감정없는 사람이 없다.

그런만큼,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조직들도 서로간에 지켜야 할 예의는 지켜가면서 말과 글과 의견을 나눌 수는 없을까.

''존중이 지켜지는 사회''를 느끼게 할 수는 없을까.

비판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정하되,생산적인 비판을 만들어주면 오죽 좋을까.

모든 판정을 꼭 법정으로 끌고 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 비판들이 있어 우리 사회의 ''관용''을 느끼게 하는 생산성은 불가능할까.

공감대가 넓은 이슈를 만들어 주면 오죽 좋을까.

다양해지고 복잡한 사회에서 다채로운 이슈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만,좀 더 생활현장에 가깝게 다가오는 이슈를 끈기있게 다루면 언론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일까.

현실의 어려움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은,황폐한 심성으로 서로를 다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우리 사회의 심성에 과연 어떤 작용을 하고 있을까.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