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국보(國寶)라며 숱한 일화를 뿌렸던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의 연애편지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인으로서의 문재(文才)도 뛰어났던 양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 유학시절 서울에서 짝사랑했던 여대생을 잊지 못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구구절절한 미문의 연애편지는 흠모하는 여대생의 손에 닿기도 전 사감의 검열로 번번이 차단되곤 했다.

미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그는 성경 가운데서 ''사랑''과 관련된 대목들을 뽑아 연서를 보냈고, 정성에 감복한 여학생으로부터 마침내 승낙을 얻어냈다는 얘기다.

이처럼 편지는 훨씬 진한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사도 바울이 각처의 교회에 보낸 편지는 하나님의 메시지와 함께 우리 삶의 지침과 교훈을 주는 백미로 꼽힌다.

신약성경의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디모데전.후서 에베소서 등은 바울의 편지들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같이 편지로 대변되던 글쓰기는 전화가 일반화되면서 뒷전으로 물러가고 말이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됐다.

연애의 감정조차도 글보다는 말이 앞섰다.

그러나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문자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조차도 문자송신에 익숙해 있으며, 전화로 하던 수다떨기도 채팅으로 바뀌고 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e메일주소나 홈페이지를 가져 글쓰기는 더욱 일반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맞춤법이 무시되고 특정한 문자가 마구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글의 내용도 감각적으로 치우치면서 가벼워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글이 일상어에 가까워지면서 생동감이 솟고, 글쓰기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말하듯 하는 구어체가 글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 스승 자녀에게 한번쯤 정겨운 편지를 띄워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