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무역업체 ''윌 인터내셔널''을 운영하는 이기중(49)씨.

그는 지난주 창업 이후 5년간 거래해오던 국내 모 은행과의 거래를 대폭 줄이는 대신 대출조건이 나은 홍콩상하이은행과 새로 거래를 텄다.

이씨는 동생의 권유로 보험도 평생관리를 해준다는 네덜란드계 ING보험에 들었다.

이 사장은 중동지역과의 무역거래가 급증하자 최근 외빈용 차를 중동사람들이 좋아하는 벤츠로 바꿨다.

대우계열사 출신인 이 사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싱가포르 화교자본에 넘어간 서울 힐튼호텔이 회사에서 가깝고 단골고객 우대조건도 좋아 외국바이어들을 이 곳에서 대접한다.

이씨가 자주 이용하는 일산신도시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주유소들은 SK를 제외하곤 전부 외국계다.

주말이면 그가 가족과 함께 쇼핑을 즐기는 곳은 주차하기 편한 미국계 월마트나 프랑스계 까르푸.

이 사장의 경우에서 보듯이 최근 몇년새 외국자본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까지 놀라울 정도로 넓고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업과 유통업은 물론이고 제조업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외국자본은 거의 전업종에 걸쳐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메이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증권사빌딩까지 외국인 손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외국계 독주체제인 업종이 한둘이 아니다.

국내 종묘업계를 장악해온 흥농종묘,중앙종묘,서울종묘는 전부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삼성경제연구원의 유용주 수석연구원은 "무엇보다 은행과 증권,신용평가,컨설팅,회계법인 등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분야들이 급속하게 외자계로 넘어가는 상황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국내기업들에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하지 못하면 퇴출되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자본이 주는 충격은 정부에 더 크게 와닿는다.

미국 금융자본인 뉴브리지캐피털에 넘어간 제일은행의 미국인 호리에 은행장은 정부의 현대 회사채 매입주문을 거부해 재정경제부를 당황케 만들었다.

미국의 경영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호리에 행장을 ''한국의 관치를 깨는 창조적 파괴자''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적이지만 한국 입장에선 정부의 약화인 셈"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