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나쁘다는 걸 산중에서도 실감하겠네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1일 아침 전남 해남의 한 사찰에 있는 스님한테 인사차 전화를 했더니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다.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이번 초파일에 연등을 걸기 위해 시주하는 신도들이 예년에 비해 3분의 1 이상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스님은 "절 살림도 걱정이지만 중생들의 삶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안타까워 했다.

이같은 사정은 다른 사찰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이 스님은 절집에 비친 불황의 단면들을 들려줬다.

명산대찰의 경우 입장료나 주차비 때문에 벌이는 시비가 잦아졌다고 한다.

사찰 안의 찻집도 썰렁해졌고 기념품가게도 비싼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바람에 울상이란다.

대부분 사찰들의 이같은 속사정과 달리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는 신도와 각계 주요 인사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축 법요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자리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김중권 민주당 대표,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 등 3당 지도부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측은 이들의 비중을 고려해 단상 맨 앞줄에 자리를 마련했다.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은 법요식에 앞서 원장실을 찾은 이 총재 일행에게 "미안합니다,여러가지로…"라며 그간 자신의 발언이 오해를 낳게 한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각각 종교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이들이 불상 앞에 합장한 모습을 보고 한 신도는 "정작 해야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때마다 찾아오기만 하면 뭐하느냐"고 되뇌었다.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정치인들의 종교행사 참석은 선거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일 뿐 ''중생''들의 고단한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 땅에 와서 자비의 정신을 가르쳤다.

특히 남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천을 강조했다.

틈만 나면 종교지도자를 찾아가는 이들이 선거용 ''불심(佛心)잡기''에 연연하기보다 국민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자비정신의 끝자락이라도 쥐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화동 문화부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