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 1백일을 맞았다.

지난 1백일을 복기(復棋)해보면 한·미외교 포물선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미국은 오는 9일부터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총회에 북한인의 참석을 허용치 않고 있다.

김대중정부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야단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이랄 수 있는 노동신문이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이 남한 미군주둔의 필요성을 용인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온 김 대통령은 지난 3월7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부시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빼놓지 않고 거론했으나 상황전개는 김 대통령의 설명과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대(對)부시관계에서 김 대통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정신적 부담이자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이곳 워싱턴의 분석이다.

지난 1백일 동안 김대중정부는 미국쪽을 향해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문제라면 우리도 알 만큼 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상주의에 입각한 강의(lecture)''를 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 미국쪽의 분위기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미사일방어(NMD)를 둘러싼 한국입장에 대한 구차한 변명, 한·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유럽을 테이블에 끌어들이려는 한국의 태도 또한 미국의 김대중정부에 대한 사시(斜視)를 증폭시킨 요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보다는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일정을 먼저 설정해 놓고 이를 명분으로 한·미정상회담의 조기개최를 밀어붙였던 김 대통령의 외교방식에 더 큰 패착이 있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대중정부가 한·미정상회담을 얼마나 서둘렀는가는 부시의 취임식이 있던 1월20일 바로 그날 저녁 한화갑 의원이 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만나 "한·미정상간의 회동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한국에서나 통할 청탁(?)''을 무용담 삼아 기자들에게 소개한 데서도 읽을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 사전준비를 위해 워싱턴을 찾았던 이정빈 전외교장관이 특파원들과의 대화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만났더니 ''현재 국무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 혼자''라며 ''아직 국무부 실무자들에 대한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고충이 많다''는 분위기를 풍기더라"고 소개한 대목 또한 한국이 한·미정상회담을 얼마나 서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미정상회담 당시 부시는 한국문제를 다룰 실무자를 내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소한 동아태차관보와 한국대사 자리 정도는 정해져 있어야 했지만 지루한 플로리다 재검표 악몽에서 깨어나야 했던 백악관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는 백악관 입성 1백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물론 동아태차관보로 내정된 제임스 켈리 국제전략연구소(CSIS) 태평양포럼회장은 최근에야 인사청문회를 끝낸 상황이지만 상원의 최종표결을 거쳐야 하고 한국대사로 내정돼 있다는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선임부차관보 또한 내정설만 무성할 뿐 백악관이 언제 발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대중정부가 그렇게 학수고대하는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아직까지 감감소식이다.

"이미 물 건너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차라리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 문제를 뒤로 접어 둔 채 부시가 이삿짐 정리를 끝내고 모든 외교격식을 갖추어 김 대통령을 초청해 줄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노벨평화상 수상의 권위도,국민적 체면도 깎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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