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65.이화여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가야금 연주자겸 작곡가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부산 피란시절 경기중 2년생으로 고전무용연구소에서 나는 가야금 소리에 반한게 일생을 우리 국악과 함께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용두산 꼭대기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대학 3학년이던 57년 KBS 주최 전국 국악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59년 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대 국악과에 출강했고 62년 작곡을 시작, 다음해 첫 창작곡 ''숲''을 내놓았다.

명동극장 지배인, 화학회사 다큐멘터리영화제작사 출판사 사장 등을 하다가 74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가 되면서 음악에만 매달렸다.

이재숙(서울대) 김일륜(숙명여대) 교수 등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으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가야금을 들고 다니며 20세기말 한국의 창작음악을 알렸다.

책도 선배도 없이 혼자 배워 만들었다는 그의 창작곡은 국악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품격과 대중성을 함께 지녀 음악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생경하지 않다.

초연 당시 홍신자씨가 소리를 맡았던 구음협연곡 ''미궁''은 신비롭고, 가야금곡 ''비단길''은 중앙아시아 사막과 고원을 걸어가는 옛 대상들, ''아이보개''는 혼자 동생을 돌보는 계집아이의 아련한 모습을 눈앞에 그려낸다.

''자시''는 대금에 혀떠는 소리를 곁들인 실험곡, ''대련''은 박두진의 ''청산도''와 이동주의 ''강강술래''에 정악과 민속악 가락을 대비시킨 합창곡이다.

박목월의 ''고향의 달'',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에 곡을 붙인 것도 있다.

98년 일생일대의 작업인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70분)를 완성한 그는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도 겨울엔 수염을 기르고 여름엔 깎으면서 가야금과 씨름한다.

최근 SBS TV ''여인천하'' 배경음악을 만든 것도 그다.

그의 창작 4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내달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연주, 그것도 서양의 고전음악 연주쪽에 지나치게 편향된 경향이 짙다.

황 교수의 무대가 그의 음악은 물론 우리 창작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