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 과학기술부 장관 kyh21@kyh21.com >

젊은 나이에 장관이 되어서인지 "장관 그만두면 뭐 할 겁니까?"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지내왔다.

이 시대에 정치를 하는 사람 모두가 많은 자기 번뇌와 갈등을 안고 살아갈 밖에.

대변인을 맡았던 시절 삭막한 전장(戰場)의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한경에세이''가 오늘로서 끝난다.

토요일 늦은 밤 오래된 노트의 쓰다 남은 여백에 에세이 원고를 메워 나가는 작업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유신의 감옥 독방에서 밀려오는 시간과의 싸움을 계속하면서 나는 윤동주의 서시,김지하의 황토,신동엽의 금강,신경림의 농무 등 1백여편의 시를 암송했다.

감방의 하루,콩밥을 삼키고 눈을 지그시 감고 담요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시 암송에 들어간다.

이를 마치면 어김없이 식구(食口)통이 열리고 점심이 들어오곤 했다.

그때 이후 내가 살아온 지난날 가운데 아픔의 순간,고통의 순간이 줄줄이 시가 되었다.

감방의 회벽(灰壁)에 못으로 시의 향연을 벌였다.

집필이 허락되지 않던 그 시절 집필실에서 훔쳐온 연필심으로 이 소중한 옥중 시를 성경에 옮겨 적었다.

''시는 고통을 찾아가는 순례''라고 자못 그럴듯한 시론을 만들기도 했다.

''시인은 어떤 일보다 좋은 시 한 편을 세상에 남기는 일만 못하다'' 그런 내게 30여년 전 대학 채플에 오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신지체아와 버나드 쇼가 함께 망망대해에 빠졌다.

붙들고 있는 나무토막은 한 사람밖에 감당하지 못한다면 둘 중에 누가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느냐?

대강당에 모인 신입생들은 침묵을 지켰다.

''버나드 쇼가 살아남아 인류를 위해,문학을 위해 더욱 큰 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결론을 내릴 리는 만무하다고 짐작했다.

자기 희생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아닐까 한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처자식이 있는 사람을 대신해 죽음의 길을 걸어간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일본인 취객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이수현,9명의 장애자를 입양한 아담 킹의 아버지.

이 모두가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송구스럽게도 나는 정치가 시보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의 글을 읽어준 한경에세이 독자여러분,''시보다 아름다운 정치''에서 다시 만나기를….

"한경에세이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