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외국인들의 대한(對韓) 투자는 신규투자가 아닌 대부분 국내기업 인수합병(Cross-Border Merger and Acquisitions)의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IMF의 계간지 ''Finance and Development'' 최신호에 실린 세계은행 모디(Ashoka Mody)와 네기쉬(Shoko Negishi)의 논문에 따르면 외자에 의한 국내 기업인수(50% 이상 지분 취득) 금액은 지난 3년간(98∼2000년) 3백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3년간 총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 4백억달러(신고기준)의 7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투자분야도 도소매,부동산,금융 등 비교역적(Nontradable) 서비스 분야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과거 외국인 투자는 제조업 중심의 신규투자(Greenfield Investment)가 주종을 이뤄왔다.

이는 외자유치가 과연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또 외국인 직접투자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 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회복과의 상관관계 낮다=외자에 의한 국내 기업 인수는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 있는 자산이 폐기처분 되는 것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내에서는 위기징후 기업에 투자할 주체가 달리 없는 상황에서 외자유치만이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거시 경제회복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디와 네기쉬는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의 경우 경제회복 속도와 외자유치는 오히려 역(逆)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외자유치보다는 해외에서의 수출수요 증가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여부가 경제회복을 이끄는 핵심요소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외자유치가 기업가치에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외자유치에 따른 일시적 기업가치 증대효과가 기업문화 충돌로 인한 기업가치 감소로 상쇄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헐값 매각은 없었나=부채비율 2백% 달성 정책 등에 따라 ''소나기식 매물''을 내놓은 우리의 경우 헐값 매각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장부가의 25∼80%에 불과한 가격으로 매각돼 얼핏 보면 흔히 ''fire sales''라 불리는 약탈적(predatory) 헐값 매각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헐값 매각여부와 관련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자산매각 가치의 적정성 여부는 ''거품효과''와 ''환율효과'' 두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위기를 겪기전 자산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을 가능성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 등에 의한 묵시적 보증(implicit guarantees)으로 부풀려진 자산가치가 경제위기로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이다.

두번째로는 위기 직후 과도한 환율의 평가절하로 외화표시 자산가치가 급감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다.

그 결과로 환율이 균형수준으로 회복되고 다시 외화표시 자산가치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가가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디와 네기쉬는 한국의 경우 헐값 매각이라기보다는 ''자산의 질(quality of assets)''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1998년 초 환율이 15%나 평가절상됐는데도 99년에 외자유치가 38%나 증가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환율효과''나 ''거품효과''라기보다는 외자에 의한 국내 기업 인수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변화가 외자유치 급증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환율효과''나 ''거품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지난해 이후 부터 외자유입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외환위기를 겪은 모든 나라들이 헐값 매각시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하겠다.

최경환 전문위원·經博 kgh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