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leeng@ftc.go.kr >

독일의 라인강변에는 로렐라이 언덕이 있다.

뱃사공들이 아름다운 금발미녀 로렐라이의 노랫가락에 홀려 많은 사고를 당했다는 전설과 노래 덕분에 유명해져 수많은 관광객이 그 언덕을 찾아간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바위가 있을 뿐 볼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중에 이런 실망을 안겨주는 곳이 로렐라이만은 아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해변의 인어상도 그 유명한 이름에 끌려 막상 가보면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에 누구나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비결은 무엇일까.

로렐라이 언덕 뒤에는 금발의 로렐라이가 불렀다던 노래와 전설이 있고,오줌싸개 소년 동상 뒤에는 식수용 분수에 오줌 싸는 모습을 조각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며,암스테르담 인어상에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가 숨어 있다.

비록 작은 아이템이지만 문화의 힘,아이디어의 힘이 전세계 관광객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템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행운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투어가 많다.

영화를 통해 관광자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톨스토이 생가에 가면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할 때 쓰던 책상과 펜뿐만 아니라 여든 살 때의 육성을 녹음한 레코드가 있어 19세기의 톨스토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느냐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하면 떠오르는 관광아이템이 없다.

우리 역사가 세계 중심에 서지 못했던 연유로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고속 경제성장 과정과 88올림픽 등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자원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국사 석굴암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최근에는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학자와 예술가가 배출됐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이들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우리 영화 ''쉬리''의 촬영현장 투어가 전세계 관광객을 유혹하고 남북을 잇는 경의선이 이미 허물어진 베를린장벽보다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