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

한번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속속 이 땅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떠나가서는 돌아오려 하지 않습니다.

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이 땅, 부모가 살아있는 이 땅을 떠나가고, 떠나가서는 좀처럼 돌아오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떠나가면 다시 돌아와야 할 땅인 것으로들 알았습니다.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 조국이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것으로들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려 할 뿐만 아니라 다시 돌아오려 하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땀흘려 키운 우리 자식들이 이 땅에 정 붙이지 못하고 등 돌려 떠나가 버리고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는 일,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한때 못 먹고 못 살아 식솔을 거느리고 떠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떠나가는 사람들은 경우가 다릅니다.

먹고 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그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총체적으로 이 땅의 삶이 너무도 버겁고 힘들어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못마땅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만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의 젊은 부모들 또한 아이들과 함께 떠나가고 싶어합니다.

조상의 산소가 있고,추석이며 구정 때면 그 산수 앞에 모여 정담을 나누던 이 그리운 땅을 미련 없이 떠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들의 젊은 부모들 역시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숫제 이 땅을 아주 떠나려고 작정들을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되 눈 흘기고 원망하며 그렇게 떠나는 것입니다.

이거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힘 센 나라가 침입하고 압제하여 내모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이 땅의 삶을 포기하고 훌훌 털고 일어나 떠나가려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큰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이 땅을 지키려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렸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이 되어버리고 ''애국''이라는 말 또한 귓전에 까마득 멀기만 합니다.

어느 새 이 땅은 차라리 떠나가야 속 편할 만큼 그렇게도 지긋지긋한 곳이 되어버렸을까요.

그런데 정말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는 이들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 테면 가라는 식입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가 희망을 걸어야 할 새로운 세대들이 이 땅을 등지고, 산 설고 물 선 낯선 곳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도록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물론 묻지 않습니다.

떠난 후 다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묻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땅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곳, 떠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버렸는가에 대한 의문 또한 없습니다.

아무리 떠나도 이 곳엔 남아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식입니다.

정치가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쥐느냐 빼앗기느냐 입니다.

권력 말입니다.

그 숨막히는 게임의 장(場)에서 그들은 누가 떠나고 누가 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것은 떠나가는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떠난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이들 중에는 입시 지옥, 교통 지옥, 생존 경쟁의 지옥을 벗어난다는 해방감을 갖고 이 땅을 떠나는 이들 또한 없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떠나는 이들을 그냥 남의 동네 불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붙잡아야 합니다.

붙잡아도 떠나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제라도 살만한 땅, 아름다운 땅으로 다시 일구어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일까요?

이 땅을 떠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이….

kimby@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