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leeng@ftc.go.kr >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은 신고인과 피심인,관계자들로 북적인다.

공정거래법 사건에 대한 심결이 있기 때문이다.

심결하는 과정은 하나의 게임이다.

심사관과 피심인은 골대를 향해 공을 몰아가듯 서로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위원들은 마치 심판처럼 그들의 주장을 토대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다.

심판정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다뤄지는데 다양한 사건만큼이나 피심인들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읍소''형이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세금도 못 내고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봐 달라고 한다.

또 ''모르쇠''형도 있다.

공정거래법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형이다.

관련업자들끼리 서로 출혈경쟁 안 하고 잘해 보겠다는 상부상조정신으로 똑같은 가격을 받았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한다.

가끔 ''공갈협박''형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높은 곳 어디에 있는데 계속 이렇게 나오면 심사관의 신상에 해로울 거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오리발''형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도 그런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담합에 가담한 5명의 피심인 중 3명이 시인하는데도 그 자리에서 나머지 2명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들어 늘어나고 있는 유형이 있는데 ''설득''형이 그것이다.

주로 대기업관련 사건이나 중대사건에서 변호사를 대동하는 경우인데 과거 심결례와 외국사례를 들면서 반론을 펴기도 하고 때로는 한국적 현실에 대해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심사관과 피심인간에 팽팽한 논리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논리가 뛰어난 측의 의견이 채택된다.

요즘 세상에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든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식의 사또재판이 있을 수 없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면서 토론과정을 통해 합리적 결론에 이른다.

성숙한 토론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는 습관을 기를 때 가능하다.

설득형 시민이 많은 성숙한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