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무(48) 뷰티플러스(Beauty Plus) 사장의 머리속엔 자나깨나 흑인여성들 뿐이다.

차를 탈 때나 길을 걸을 때 유독 흑인 여성들만 눈에 들어온다.

뉴저지주 클립튼에 있는 사무실 책상 위에도 흑인여성 잡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특히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녀들의 헤어스타일.흑인여성의 헤어스타일이 그의 사업기반인 탓이다.

뷰티플러스는 가발수입업체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발보다 부가가치가 큰 부분가발형태인 헤어피스의 매출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직접 제품을 개발해서 한국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생산,미국 전역에 있는 2천개 이상의 거래업체에 공급하는 국제무역회사이다.

미국에서 가발(헤어피스포함) 수요층은 90%이상이 흑인여성이다.

흑인들의 머리카락은 자랄수록 휘어지고 때론 살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날카롭다.

따라서 항상 손질을 해야 하고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옷을 입듯 가발을 걸쳐야 한다.

한때 사양산업이라는 말이 나왔던 가발산업이 아직 건재한 이유다.

미국내 5천만명의 흑인중 성인여성은 약 1천7백만명.이들이 있는 한 가발산업은 계속 성장하는 산업인 셈이다.

이 사장이 가발시장에 뛰어든 것은 꼭 10년전인 지난 91년.당시 선발업체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에 이민와서 6년간 "월급쟁이"로 가발업체에서 근무한 그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시간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남보다 두배는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주말에도 항상 일과 씨름했다.

결정적인 것은 머리싸움이었다.

단순 수입판매보다는 제품을 직접 개발해서 이를 브랜드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비교적 유행을 빨리 타는 헤어피스가 대상이었다.

매달 2-3개씩 연평균 20-30개의 신상품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전체 아이템이 5백개를 넘을 정도다.

이중 고급 제품들을 브랜드화했다.

가발업계에선 거의 첫 시도였다.

초기에는 "Gold K"라는 브랜드를 선보였고 4년전부터는 "쟈넷 콜렉션"이란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으로 한때 흑인들의 유행을 선도했던 쟈넷 잭슨한테서 "쟈넷"이란 이름을 따왔다.

흑인 여성잡지는 물론 전국 소매상에 "쟈넷 콜렉션"브랜드의 포스터를 붙이는 등 홍보에 많은 신경을 썼다.

연간 광고비만도 40만달러 이상 들였다.

그 결과 "쟈넷 콜렉션"은 이제 흑인여성들에겐 꽤 알려진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화에 성공하면서 매출은 빠르게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은 무려 3천1백만달러.미국에서 활동하는 70-80여개의 가발업체중 "톱3"안에 드는 규모다.

올해는 3천7백만-3천8백만달러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플로리다까지 전국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등 물동량이 많아지자 배달업체인 UPS는 아예 이 회사만 전담하는 컨테이너를 운영할 정도가 됐다.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0년만에 직원이 70명으로 늘어났고 뉴저지 본사외에 뉴욕 맨해튼과 조지아주 애틀랜틱시에 대형 지사를 세워졌다.

이 사장이 미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85년초.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한 이민이었다.

더 나이들기 전 큰 시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맨손 이민의 시작은 쉽지 않았고 우연하게 취직한 곳이 소규모 가발업체였다.

인하대 재학시절 전공이 무역이었던 만큼 "가발무역"이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았다.

어려운 것은 흑인여성을 배우는 것이었다.

가발사업의 성패는 누가 흑인머리를 제대로 파악하는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흑인여성들의 머리카락을 파악하기 위해 휴일이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브루클린의 미용실로 달려갔다.

미용실 뒤켠에 앉아 머리를 손질하는 흑인여성들을 쳐다보다 쫓겨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도 흑인들과의 모임때는 직원들을 대신 보내지 않고 항상 직접 나갈 정도다.

창업 10년만에 회사가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이사장에겐 할 일이 아직 많다.

우선 품질을 더욱 고급화하는 일이다.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고급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기때문이다.

그 다음 할 일은 백인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시장은 극히 미미하다.

시장을 뚫으려면 수요부터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수요가 일어나면 시장은 무한하다는 판단이다.

개발팀에서는 이미 백인들의 가발에 대한 연구에 본격 들어간 상태다.

이 사장의 해외출장은 1년에 6번 이상이다.

주요 출장지는 중국.1년에 한두 달은 중국에 머물 정도다.

출장때마다 중국의 가발산업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는 마지막시장인 가발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수입판매상들이 과열경쟁을 하지 않는 등 조금씩 양보하고 더욱 단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