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미국 시카고 컴덱스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서 탄 비행기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157편.

벤처의 본산 실리콘밸리에 간다는 생각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다.

그러나 비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관제탑은 시카고 오헤어공항의 모든 이·착륙을 금지시켰다.

비바람이 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이륙허가가 났다.

기류는 여전히 불안했다.

비행도중 여러차례 요동을 쳤다.

밤 1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8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

지상 1만m 가까운 상공에서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밤 11시께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에 불시착했다.

경찰과 공항 관계자 5∼6명이 올라와 그를 급히 옮겼다.

사태는 진정됐고 모두들 샌프란시스코로의 재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꼬여서일까.

출발이 늦어지더니 승객중 한명이 기내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불법 흡연을 하다가 들킨 것.

앞서 실려나간 노인의 짐을 찾는 작업도 병행됐다.

출발은 더욱 지체됐다.

다음날 새벽 1시가 돼서야 다시 뜰 수 있었다.

승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지 승무원은 경황없는 와중에 "샌프란시스코 가고 싶은 사람 손 드세요"라며 농담까지 했다.

새벽 2시50분.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했다.

4시간30분이면 올 것을 꼬박 두배인 9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1백50여명의 승객 가운데 불평을 늘어 놓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노트북컴퓨터로 업무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며 조용히 기다렸다.

착륙 순간엔 승무원들에게 열렬한 박수까지 보냈다.

기장은 "31년동안의 조종생활중 오늘같은 경험은 처음입니다. 갖은 불편을 인내로 견뎌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며 인사했다.

이날 밤의 비행은 성숙된 시민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이성태 벤처중기부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