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에스프리(Esprit)"는 영화와 인연이 깊은 차다.

아마 많은 영화팬들은 "007 내가 사랑한 스파이" 에서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 잠수함으로 변신한 다음 오징어처럼 먹물을 뿌리고,어뢰를 발사하다가 유유히 해수욕장으로 다시 나온 흰색 차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큰 인기를 얻었던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운전을 못해 쩔쩔매는 것을 줄리아 로버츠가 멋있게 운전하며 영화의 시작을 알리던 차도 떠오를 것이다.

이 차가 바로 로터스의 에스프리다.

에스프리는 1975년 첫 선을 보였으니 아주 오래된 차는 아니다.

초기 모델은 직렬 4기통 2.0엔진을 차체 중간에 엊은 중소형급의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마니아들이 로터스 에스프리를 명차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이유는 뛰어난 성능 때문이다.

차체를 FRP로 만들어 전체 무게가 1천2백kg밖에 나가지 않는 에스프리는 터보를 얹어 출력을 2백13마력까지 끌어 올렸다.

보통 중소형차의 출력이 1백마력 내외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능인 셈이다.

특히 직렬 4기통 2.2DOHC엔진을 탑재해 출력을 3백마력까지 높인 에스프리 스포츠 300모델에 이어,V8엔진에 3.5리터 DOHC 트윈 터보를 달아 최고 출력 3백54마력,최대 토크 40.8kg에 최대시속이 2백82km,출발후 시속 1백km에 도달하는 시간을 4.5초로 단축시킨 신모델은 슈퍼카 반열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터스 에스프리를 모는 것은 소심한 운전자나 초보자가 할 일이 못 된다.

이 차는 발진시키는 것도 어렵고 변속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순식간에 7천rpm의 레드라인에 이르는 성질 급한 이 차를 몰기 위해서는 변속시점을 놓치지 않고 기어와 클러치 조작을 멋지게 해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해내기만 하면 빠르기는 정말 빠른 차다.

특히 3천5백rpm에서 터보가 터지는 순간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

20세기를 빛낸 1백대 차량의 앞 서열에 당당히 자리매김된 로터스 에스프리.

비록 최고급의 슈퍼카는 아니지만 보통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카로 오랫동안 자동차 마니아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김채원(현대/기아자동차 연구개발본부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