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간판 사회다.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는 그가 어느 집 자식인가,대학은 어딜 나왔나를 따진다.

해외에서 MBA 학위라도 땄거나 영어를 잘하면 곧잘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버린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미국 벤처 투자자들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미국 IDG 그룹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Demo Letter"는 지난해 12월 호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미국 주요 벤처 투자자 및 벤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내용 중에는 "다음 중 어떤 사람이 비즈니스를 잘 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벤처 기업가들의 25%는 MBA 학위가 비즈니스 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많은 벤처 기업을 경험한 벤처 투자자들 중에는 MBA가 비즈니스 능력에 도움된다고 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학위 이외의 요소들,예를 들어 일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두어 그에 집중하는 능력 (ability to prioritize and focus)에 90%가 동의했다.

정직성,다시 말해 믿을만한 사람인가 (high personal integrity)에 84%, 사업의 장래에 대한 비전 제시가 명확한가(ability to articulate future vision)에 81%의 후한 점수를 줬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는 실무경험이 더 중요했다.

미국의 A라는 첨단기업이 실리콘 밸리에 지사를 연다고 가정해보자.그 지사에 배치할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 다음 세 사람을 면접했다.

한 사람은 이제 막 MBA를 취득한 사람,다른 한 사람은 장기간 A사의 사업과 비슷한 분야다른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해온 사람,세 번째 사람은 학위는 변변치 않으나 다년간 실리콘 밸리에서 A사가 하고자 하는 분야의 사업을 몸소 운영해본 사람이다.

과연 누구를 쓰겠는가.

첫번째 사람은 물론 최신의 경영이론에 정통할 것이다.

하지만 실무경험이 없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우려된다.

두번째 사람은 들은 바가 많아 할 말은 많지만 막상 일을 시켜보면 역시 시행착오가 많다.

역시 세번째 사람이 A사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론만 갖춘 사람은 자신이 넘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분야에서 지식만 갖춘 사람은 훈수만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비즈니스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요컨대 이론이나 어깨너머의 지식보다는 해당분야에서의 실무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이 실리콘 밸리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기준에서 현지근무인력을 채용할 것인가.

과거에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에 지사를 세우려면 으레 한국에서 주재원을 파견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영어실력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현지의 언어장벽과 특히 문화적인 이질감으로 주재기간의 상당부분을 허비했다.

주재도시의 지리에서부터 시작해 식당이나 쇼핑몰은 어디인지,어느 지역이 우범지역이라 밤에는 출입을 삼가해야 하는지,애들 학교는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모두 다 새로 배워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적응하다 보면 어느덧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생활과 문화에 익숙한 한국계 미국인들은 어떠한가.

필자의 경험으로 볼때 유학이나 이민으로 미국에 와서 살고있는 한국 분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학위를 하신 분들도 거의가 언어나 사회관계의 기술이 덜 필요한 분야 즉 엔지니어,회계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는 분들은 정말로 드물다.

그렇다고 미국인을 써야 하는가.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우선적으로 성공적인 미국 비즈니스맨들은 많은 급여를 요구하는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사 뽑아놓았다 하더라도 문화나 비즈니스 관습 등의 차이에서 오는 한국 본사와의 화합(Chemistry)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요즈음 미국에 진출하는 많은 한국기업들이 현지인을 채용한다면서 앞뒤 잘 안 살피고 덜컥 미국인 지사장을 채용했다가 낭패를 보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미국의 유명기업을 다녔다고 해서 충분치는 않다.

그가 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어떤 성공사례를 남겼는지,주위의 평판은 어떤지를 다각도로 짚어보는 절차가 필요하다.

켄리 < 씽크프리 공동창업자 ken@thinkfr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