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가야만 "인종의 용광로"를 구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어지간한 MBA스쿨에 가보면 웬만한 나라 출신은 다 만날 수 있다.

이왕이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에서 첨단 경영기법을 배우겠다며 미국행 비행기를 탄 외국인들로 MBA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쿨"이다.

최근엔 일부 학교들이 외국인에 대한 무보증 학자금 대출을 시작하면서 외국인들의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

2년전 이 제도를 도입한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99년 31%에서 지난해 46%로 급증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 출신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영어 외에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중국어다.

수업시간에 미국인들 못지 않게 발표와 질문을 많이 하는 이들이 인도 사람이다.

이들 두 나라의 경우는 자국내 사정 탓도 있겠지만 신판 "어메리칸 드림"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다.

대부분 미국에 남아 "성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인도에 비하면 일부 학교에 한정된 편이고 졸업 후 미국에 남는 경우도 적다.

문화 언어 역사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온 비즈니스맨들이 2년을 부대끼며 지내는 만큼 MBA는 그 어느 교육과정보다도 국제적 환경에 많이 노출돼있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그 나라 사정을 훤하게 알게 되는 간접교육의 기회가 풍부하다.

대부분 비즈니스스쿨들이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1년간은 각국 학생을 골고루 섞어 스터디팀을 만들어준다.

기자가 속한 팀을 예로 들면 미국인 3명, 독일과 러시아 출신이 각 1명씩이다.

이들과 함께 네델란드 기업 필립스의 세계화 전략을 토론할 땐 다국적 기업에서 회의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국제적 이슈를 다룰 때면 교실 자체가 작은 UN(국제연합) 총회로 변한다.

"아시아에서는 뇌물이 불법이 아니지만"이라며 섣불리 넘겨짚던 "국내파" 미국 학생의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공격당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미국 바깥의 기업을 다룬 케이스 스터디 (case study:사례연구)를 할 때면 최근 소식을 덧붙일 수 있는 해당국가 출신들이 한명씩은 꼭 있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에겐 그런 기회가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을 다룬 케이스가 채택되는 일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학생들만 다국적인 게 아니다.

4분의 1이 넘는 교수들이 외국인이다.

오히려 해외 경험이 적은 미국인 교수 보다 권위를 인정받는 교수들도 적잖다.

다만 외국인 교수들의 액센트가 특이해 유학생들은 "영어 보다 어려운 영어"를 알아 듣기 위해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교실 밖에서도 자신이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나라 마다 다른 사고방식과 비즈니스 관행을 속속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다.

각국 출신들이 조직한 나라별 학생클럽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서다.

라틴클럽에서 살사댄스를 배울수도 있고 프랑스클럽에서 정통 와인파티를 즐길 수도 있다.

1학년 여름방학 기간 동안 세계 각국으로 떠나는 "글로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단기간에 "지역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항상 미국식"이라는 도식에 빠지기 쉽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종의 용광로"는 결국 한가지 쇳물로 녹아 내린다.

바로 미국식 가치다.

그 중에는 현금흐름, 수익성, 주주가치, 개선정신 등 이미 보편화되고 있는 긍정적인 가치도 많지만 기업경영에 있어 지나치게 경쟁과 효율에만 집착하고 인간적인 면을 도외시하는 단견도 적잖은 편이다.

미국에서만 쓰일 수 있는 특수한 수익모델이 세계 어디서나 통할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미국인들의 국제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도 단점이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학생은 "우리 외국인들이 미국 비즈니스맨들의 글로벌화를 도와주는 비중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쨋든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칠 꿈을 키우며 자신에게 "글로벌 네트워크"가 절실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겐 MBA가 적절한 대안임은 분명한 것 같다.

한경닷컴 주미특파원.와튼스쿨 MBA재학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