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leeng@ftc.go.kr >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초임 과장으로 일하던 때다.

하루는 어느 대학교 앞에서 조그마한 복사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잔뜩 열이 나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떤 버릇없는 젊은이가 불공정거래를 하는 바람에 자기들이 다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야기인즉 그 학교 주변에는 자기처럼 복사를 해 주고 먹고 사는 가게가 4 ∼ 5개 있는데 그동안 장당 20원씩 복사료를 받아 왔단다.

그런데 어느날 군대에서 갓 제대한 젊은이가 새로 가게를 열더니 장당 15원을 받더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단골가게를 등지고 젊은이가게로 몰린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기존의 모든 가게에서 난리가 났고 당장 그 젊은이를 처벌해 달라고 했다.

필자는 가격이라는 것은 가게마다 다를 수 있고 값이 싸면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이익이 아니냐고 설득해 보았지만 끝내 할아버지는 납득하지 못했다.

필자가 공정거래 분야에 몸담아 오면서 경쟁이 좋은 것이라는 걸 이해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한 유일한 경우다.

지금은 경쟁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하나의 상품에는 값도 당연히 하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기름값이 자유화되면서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예를 들어 주유소를 보자.

옛날과 달리 지금은 주유소마다 기름값과 서비스가 다르다.

소비자들도 자기 선호에 따라 싼 가격을 선택하거나 가격보다는 경품이나 세차서비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일물일가의 고정관념이 남아있는 것 같다.

햄버거만 하더라도 같은 제품이면 어디서나 그 값이 같아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같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명동 한복판에 있는 햄버거 매장의 임대료는 변두리 매장보다 훨씬 비싸지 않은가.

또 여러 햄버거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지역은 매장이 하나밖에 없는 지역에 비해(담합이 없다면) 당연히 쌀 것이다.

값이란 시장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조건에 따라 가격이 제때에 제대로 움직여야 소비자의 구매도,기업의 생산도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다.

지금쯤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겠지만 만약 그 후손이 가업을 물려받았다면 가게마다 복사료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용산전자상가에서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은 모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