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희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선 산의 윤곽이 기묘하다.

검게 타오르는 불꽃, 그런게 있다면 꼭 빼닮은 모습이다.

등뒤로 아침햇살을 받은 산은 이내 검은 불꽃의 정체를 드러낸다.

하얗게 빛을 튕겨내는 바위무리다.

뿌리부터 머리까지 한몸으로 내보이는 산.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뻗은 호남정맥이 크게 숨을 몰아 치솟은 월출산(809m)이다.

사방 1백리 안은 낮은 구릉과 평야.

크고 높은 편은 아니지만 유달리 장대해 보인다.

곳곳에 타오르는 흰 바위불꽃 또한 기세등등하다.

그 바위불꽃 속으로 들어간다.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도갑사 8.5km의 월출산 종주길.

익숙한 걸음으로도 6시간은 족히 걸리는 난코스다.

산행의지는 솟구친다.

"월출산 종주는 곧 건강보증서"로 통한다니 말이다.

들머리 영암아리랑 노래비에서 천황사까지 15분.

키작은 산죽길을 따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길은 예상대로 가파라진다.

돌부리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철계단 뒤에는 곧추선 철사다리가 버티고 있다.

내리막은 없다.

그렇게 50분.

1백20m 높이에 가로지른 52m 길이의 구름다리를 본다.

출렁이는 구름다리에서 맞는 바람과 흰머리 암봉들에 둘러싸인 바람골의 풍치가 시원하다.

천황봉은 좀체 곁을 내주지 않는다.

까마득한 높이의 철사다리가 "이래도 더 오를래" 하는 투로 매봉에 걸쳐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손에 힘을 준다.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인다.

매봉에서의 잠깐 휴식은 절망으로 흔들린다.

철사다리로 이어진 수직내리막이 아찔하다.

천황봉은 저 위에 있는데 내리막이라니.

사자봉을 돌아 나 있는 오름길이 힘겹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가깝다.

위로 곧게 뻗은 나무계단이 반갑다.

발디딤이 좀 편하다.

나무계단 끝 옆에 있는 통천문.

천황봉에 오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좁은 굴문이다.

여기서 천황봉까지는 1백m.

드디어 천황봉이다.

너른 바위덩이 위에 정상비와 소사터비가 서 있다.

갑자기 떠들썩해진다.

포항의 아줌마등산회원들이다.

배낭에서 꺼내 놓는 점심꾸러미가 장난이 아니다.

완전군장 수준인데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

아줌마 만세다.

천황봉부터는 내리막길이 많다.

그러나 내리막을 더 조심해야 한다.

오름길에 진이 빠져 잘못했다가는 발을 헛디딜수 있다.

9백99개를 헤아린다는 이름붙은 바위구경에 넋을 놓아서도 위험하다.

천황봉~구정봉 사이 중간 휴식지점에서 천황봉쪽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그곳에서 구정봉까지의 바람재.

유난히 바람이 많고 세다고 해서 바람재라 했다는데 과연 그런것 같다.

여성을 상징하는 베틀굴 위 구정봉은 신비롭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위틈을 통해 오른 구정봉 너럭바위에는 9개의 웅덩이가 패여 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향로봉 북쪽 비탈길부터 내리막이 급해진다.

우르르 몰려가는 아줌마들이 저만치 앞서간다.

따라잡을수 없다.

발바닥이 바늘로 찌른 것처럼 아프다.

억새능선 들어서자 갑작스런 노랫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아줌마들이 박수장단에 맞춰 부르는 영암아리랑가락.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그리고 도갑사에 이르는 흥계골에서 만난 몇그루의 동백과 진달래.

꽃색깔이 그보다 더 맑고 고울수 없다.

도선수미비를 지난다.

7시간이 넘는 어려운 산행을 마감하는 순간.

도갑사 해탈문이 오랜시간 혼자한 생각의 조각을 꿰맞출 여유를 되돌려 준다.

영암=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